대담·인터뷰

〔긴급대담〕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세발전을 논한다

이 글은 일본 도꾜 대동연구소 소장인 강민화 박사가 최근 전자우편을 통해 질문하고, 미국 뉴욕 통일학연구소 소장인 한호석 박사가 전자우편을 통해 답변한 대담기록이다. 

<논점 1> 새로운 조미관계는 무슨 뜻인가?

강민화 : 전 세계가 주목한 가운데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조미수뇌회담이 진행되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이 날 공동성명에서 새로운 조미관계를 수립할 데 대해서 강조했습니다. 지금까지 조선은 미국을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라고 부르며 적대시해왔고, 미국은 조선을 “완전파괴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적대시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싱가포르 조미수뇌회담 공동성명에는 “새로운 조미관계를 수립해나가기로 하였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새로운 조미관계라는 개념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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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석 :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 제1항에 명기된 “새로운 조미관계를 수립해나가기로 하였다”는 구절의 속뜻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조선과 미국이 새로운 관계를 수립한다는 말은 두 나라가 적대관계를 청산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두 나라가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대조선적대정책을 폐기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미국이 대조선적대정책을 폐기한다는 말은 조미적대관계를 발생시킨 원인이며, 그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 악화시켜온 근본원인을 제거한다는 뜻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 폐기는 미국군이 한국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감행해온 대조선전쟁연습을 영구히 중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북침핵전쟁돌격대로, 미국의 한국지배축선으로 존재해온 주한미국군을 완전히 철수하는 것으로 완료될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조선적대정책을 폐기하면, 조선과 미국은 국교를 수립하게 될 것이고,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맺게 될 것 입니다. 평양과 워싱턴에 각각 상대국의 대사관이 설치되는 날, 평양과 뉴욕을 오가는 항공로가 개설되는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 제1항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두 나라 인민들의 념원에 맞게 새로운 조미관계를 수립해나가기로 하였다”고 명기되었는데, 여기에 나오는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두 나라 인민들의 념원”이라는 말은 평화공존에 기초한 공동번영을 바라는 염원이라는 뜻입니다.

조미국교수립은 평화공존에 기초한 공동번영을 가져올 것입니다. 하지만 조선과 미국은 평화공존에 기초한 공동번영 이상으로 밀착된 외교관계에로는 나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조미관계의 기본성격은 사회주의국가 대 제국주의국가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국가와 제국주의국가가 평화공존에 기초한 공동번영을 넘어서 안보협력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합니다.

<논점 2> 중대한 변화는 무슨 뜻인가?

강 :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싱가포르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합의하던 역사적인 순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세상은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여기서 중대한 변화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한 : “세상은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는 말 속에는 여러 가지 깊은 뜻이 들어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깊은 뜻 가운데는 조미관계를 정상화하고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통일공화국을 건설하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한반도통일전략구상도 있고, 세계 2대 강국인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정세변화를 이끌어내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외전략구상도 담겨 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한반도통일전략구상과 대외전략구상은 서로 밀접하게 결부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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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 번째로 중국을 연속 방문한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중관계를 전통적 친선관계에 기초한 공동번영으로 발전시킬 것이고, 최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미관계를 새로운 평화공존에 기초한 공동번영으로 발전시킬 것으로 예견됩니다. 

이미 든든한 민족자립경제토대 위에서 경제강국의 꿈을 추구해오는 조선이 앞으로 세계 경제의 지배자들로 자처하는 거대한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공동번영을 추구하면, 빠른 속도로 융성번영할 것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한반도가 통일되는 과정에서 남측 경제와 북측 경제는 강력한 민족통일경제권을 건설할 것입니다. 남북의 과학자, 기술자들이 첨단과학기술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남북이 풍부한 지하자원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남북이 자본을 공동으로 투자하여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남북이 유라시아대륙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세계적인 물류수송거점을 공동으로 건설하면, 그것이 곧 강력한 민족통합경제권으로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20년 뒤 한반도 통일공화국은 경제력과 기술력에서 발전된 서유럽 선진국들을 따라잡은 세계 일류급 경제강국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통일공화국을 세계적인 경제강국으로 건설하려는 것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원대한 전략구상입니다. 

이제껏 통일국가건설운동을 위해 자기의 청춘도, 자기의 열정도, 자기의 재산도 바쳐온 우리 통일운동세대들은 앞으로 20년 동안 차츰 늙어가겠지만, 날로 더 젊어지는 청춘강국, 번영과 풍요가 넘치는 경제강국, 고구려 이후 1,300년 만에 자주와 존엄으로 빛나는 위대한 통일공화국에서 우리 후대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8천만 민족이 맞이하는 미래는 백두산 천지를 물들이는 동해의 눈부신 아침햇빛처럼 더 밝게 빛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 희망의 전부가 있으며, 바로 여기에 오늘 우리들이 통일국가건설운동을 위해 땀과 눈물을 흘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논점 3> 트럼프와 쿠쉬너는 일찌감치 비밀을 알고 있었다

강 : 최근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지금까지 미국이 비핵화 문제만이 핵심인 것처럼 말해온 것을 보면, 자기들의 핵무장은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의 산물이라고 주장해온 조선의 주장이 먹혀들었다는 것이므로, 이는 조선의 승리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지난해 11월 29일 조선에서 국가핵무력의 완성을 선포하고, 또한 올해 4월 전원회의에서 핵무력건설과 경제건설의 병진노선의 승리를 선포한 것을 보면서, 조선이 미국과의 대결에서 승리했다고 판단하였고, 그런 승리의 연장선에서 싱가포르 조미수뇌회담이 성사된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조미대결에서의 조선의 승리와 싱가포르 조미수뇌회담의 성사를 서로 연관시켜보는 시각에서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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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 나는 매주 월요일마다 <자주시보>의 ‘개벽예감’에 연재하는 글에서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완승으로 종식될 것이라고 몇 해 전부터 예견해왔는데, 그 예견이 이번에 현실로 입증되었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나는 최근 미국 언론매체를 통해 드러난 또 한 가지 비밀을 여기에 옮기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없습니다.

<뉴욕타임스> 2018년 6월 17일 보도기사에 세 사람의 미국인이 등장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이며, 백악관 선임고문으로, 백악관의 막후실세로 알려진 재럿 쿠쉬너(Jared C. Kushner),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심복으로 미국 중앙정보국장을 거쳐 국무장관이 된 마익 팜페오(Mike R. Pompeo), 그리고 개브리얼 슐즈(Gabriel Schulze)가 그들입니다.

개브리얼 슐즈는 누구인가요? 영국 언론매체 <파이낸셜 타임스> 2013년 10월 30일부 보도기사가 그의 정체를 밝혀주었습니다. 2006년에 설립된 슐즈세계투자회사(Schulze Global Investments)의 최고경영자인 그는 싱가폴에 사는 미국인 투자자입니다. 그는 투자실패위험이 높은 나라들에 모험적으로 투자하는 이른바 ‘미개척 투자자(frontier investor)’로 유명합니다. 이를테면, 그는 에티오피아, 그루지야, 몽골 같은 나라들에 투자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오래 전부터 눈길을 돌린 곳이 조선입니다. 그는 <파이낸셜 타임스> 취재기자에게 자신의 조선방문소감을 말하면서 “나는 북조선의 막대한 기초잠재력과 경제적 활력수준을 보고 매우 놀랐다”고 하면서, 자기가 조선의 3개 수출회사들에 4건의 투자를 성사시켰다고 밝혔습니다.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 투자자들은 누구나 슐즈처럼 조선의 거대한 경제발전잠재력과 경제활력을 목격하고 깜짝 놀랍니다. 그리고 대조선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미국의 대조선경제제재가 어서 해제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슐즈는 대조선투자를 활성화하려면 미국의 대조선제재가 해제되어야 한다는 점에 착목하였고, 마침내 모험적인 정치활동에 나서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평양과 워싱턴 사이의 비공개접촉통로 개설을 중재하는 일이었습니다. 슐즈는 쿠쉬너가 몇 해 전 아시아의 투자처를 살펴보기 위해 싱가폴에 갔을 때, 그를 처음으로 만났고, 그 뒤로 쿠쉬너와 투자문제를 놓고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는데, 그러는 사이에 쿠쉬너의 장인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쿠쉬너 자신은 백악관의 막후실세로 되었습니다.

워싱턴을 방문한 슐쯔는 쿠쉬너 백악관 선임고문을 만나 조미비공개접촉통로 개설을 자신이 중재해보겠다고 제의하였습니다. 그런데 쿠쉬너 선임고문은 조미비공개접촉통로 개설문제를 자신이 맡지 않고, 당시 중앙정보국장이었던 팜페오에게 넘겼습니다.

쿠쉬너 선임고문은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렉스 틸러슨(Rex W. Tillerson)에게 넘겼어야 할 조미비공개접촉통로 개설문제를 왜 당시 중앙정보국장이었던 팜페오에게 넘겼을까요? 거기에는 두 가지 사연이 얽혀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팜페오 당시 중앙정보국장이 조미비공개접촉통로 개설임무를 맡아볼 적임자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쿠쉬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조선의 국가핵무력에 관한 극비정보, 다시 말해서 미국 대통령에게만 보고되는 극비핵정보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쿠쉬너 선임고문은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퇴임을 앞두고 있었던 제임스 클래퍼(James R. Clapper) 당시 국가정보실장이 미국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조선의 국가핵무력에 관한 극비정보를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에게 보고하는 자리에 배석하였습니다. 그래서 트럼프와 쿠쉬너는 조선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조선의 완성된 국가핵무력을 해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조선의 국가핵무력 완성으로 조미핵대결에서 미국이 패하였다는 사실, 그래서 미국은 대화와 협상의 방법으로 조미관계를 정상화하여 미국 본토에 대한 조선의 핵위협을 차단하는 이른바 조선의 ‘핵동결’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되기까지 슐즈와 팜페오가 조미비공개연락통로 개설문제를 놓고 어떻게 은밀히 협력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미핵대결에서 미국이 패하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대통령 당선인 시절에 깨달았으며, 이루어질 수도 없는 조선의 ‘핵폐기’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한 조선의 ‘핵동결’을 추구하는 대화와 협상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이런 사정을 간파하면, 조미핵대결에서 패배한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핵대결에서 승리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진행하면서 조선의 ‘핵동결’을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명분으로 합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명기된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개념은 조선의 국가핵무력이 미국 본토를 직접적으로 위협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동결시키는 비핵화를 뜻합니다. 그런 점에서, 완전한 비핵화는 완전한 핵동결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기도 전에 주동적으로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전면 중지하고, 핵시험장을 폐쇄하는 핵동결조치들을 단행하였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승자가 패자를 평화공존의 새로운 시대로 끌어가는 형국이 아닙니까.

<논점 4> 트럼프는 합의사항을 이행할 수 있을까?

강 : 조미수뇌회담 공동성명의 조항들은 완전하고 신속하게 이행되어야 하는데,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하는 실천적 조치들을 취하여 이행전망을 한층 밝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 국내에서는 싱가포르 조미수뇌회담에 대해 그 무슨 “정치쇼”라느니, 미국이 조선에게 너무 양보했다느니 하는 반발이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스러움을 지적하면서 그의 변덕스러움 때문에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수 있다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들립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반발역풍을 뚫고 합의사항들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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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을 충실히 수행해야 할 정치적 임무는 두 가지로 축약됩니다. 하나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임무이고, 다른 하나는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는 임무입니다. 조선의 완전한 비핵화(완전한 핵동결)을 실현하는 임무도 있지만, 그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미 주동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하였으므로 트럼프 대통령은 그 임무를 수행하는 데서는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처분만 기다리면 됩니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어려운 일은 주한미국군을 완전히 철수하는 것이고,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는 데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어려운 일은 두 나라가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적들과 반대파들은 그가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려고 하거나, 조미국교를 수립하려고 할 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그의 앞길을 가로막으려고 광분할 것입니다. 그런 험한 고비들을 넘으려면 배짱과 고집이 있어야 하는데, 다행하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배짱도 두둑하고 고집도 센 사람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막강한 국가핵무력 앞에서 국가안보가 완전히 파탄당하는 최악의 위기에 처한 미국을 자기가 구원하여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 이후 미국인들의 존경과 추앙을 받는 위대한 대통령이 되고 싶은 야망을 품고 있습니다. 미국을 남북으로 분열시킬 사상 최악의 안보파탄위기가 엄습하였던 1861년 3월 4일 제16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였던 링컨은 자기가 지휘하는 북군이 남군에게 연전연패를 당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배짱과 고집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버텨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미국을 국가분열위기에서 극적으로 구원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2년 뒤 미국은 국가분열위기에 버금가는 최악의 안보파탄위기에 또 다시 빠지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조선의 국가핵무력 완성과 미국의 조미핵대결 패배입니다. 152년 전에 일어났던 국가분열위기에 버금가는 최악의 안보파탄위기가 미국을 또 다시 엄습하고 있었던 2017년 1월 20일, 링컨 대통령만큼 배짱이 두둑하고 고집이 센 대통령이 출현하였으니, 그가 바로 트럼프입니다.

그런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1년 5개월 뒤에 성사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중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에게 도발적인 대조선전쟁연습을 영구히 중지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 때, 트럼프 대통령은 즉석에서 그 요구를 받아들였고, 워싱턴에 돌아간 직후 곧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8년 동안 매년 지속되어온 대조선전쟁연습을 영구히 중지하는 것이 펜타곤과 연방의회와 군수산업체의 강한 반발을 불러올 중대사안이라는 점을 잘 알면서도,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 국방장관과 상의도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해버렸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직후 서울에 파견한 팜페오 국무장관을 통해 대조선전쟁연습 중지결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하였으니,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셈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 정도로 두둑한 배짱을 가졌으니, 험한 고비를 넘고 넘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의 합의사항들을 능히 이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배짱만 두둑한 게 아니라 고집도 셉니다. 그는 백악관 각료들과 안보보좌관들이 계속 반대해도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려는 자신의 고집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2020년 11월 3일 대통령에 재선될 것이고, 자기 임기 중에 주한미국군철수와 조미국교수립을 단행하여 150년 전 국가분열위기 이후 최악의 안보파탄위기에 빠진 미국을 구원할 것입니다. 

<논점 5> 조일관계의 미래

강 : 싱가포르 조미수뇌회담과 관련하여 일본 정부나 일본 언론의 태도는 완전히 비정상입니다. 그들은 조선을 악마화하는 잣대를 휘두르면서 “북조선에게 속지 말라”느니 뭐니 하면서 비방과 폄하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더욱 한심한 일은 싱가포르 조미수뇌회담과 관련이 없는 이른바 “일본인 납치문제”가 조미수뇌회담에서 반드시 논의되어야 한다는 뚱딴지같은 소리도 늘어놓았습니다. 아베 정권이 “납치문제”로 가로막아놓은 조일관계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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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 미래전망은 역사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전범국가이며, 패전 이후 자국의 국가안보를 전적으로 미국에게 의탁하고 미국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왜소국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미국이 하자는 대로 따라야 하며, 아베 신조(安培晋三) 일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구걸외교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왜소국의 서글픈 신세입니다.

그런데 아베 총리가 따라다니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상봉하여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을 진행하고, 역사적인 공동성명을 채택하였으며, 그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동북아시아의 정세가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은 완전히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쓰이는 통속적인 표현을 쓰면, 아베 총리는 “트럼프 형님만 믿고 졸졸 따라다니다가 결국 왕따를 당한 것”이지요.   

2000년 10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이 조미공동코뮈니께에서 평양방문과 조미정상회담을 약속한 직후인 2001년 4월 26일 일본 총리가 된 고이즈미 쥰니찌로(小泉純一郞)는 급변하는 동북아시아 정세 속에서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고 서둘러 조일관계 정상화를 추진하였습니다. 그는 2002년 9월 17일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조일정상회담을 진행하였는데, 그 회담에서 조일평양선언이 채택, 발표되었습니다. 그 날, 아베는 관방부장관으로 고이즈미 총리를 수행하여 조일정상회담에 배석하였습니다. 그 회담에서 이른바 ‘일본인 납치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사실을 자기의 눈과 귀로 직접 보고 들었던 아베가 이제 와서 그 사실을 뒤집어보려는 잠꼬대 같은 소리를 늘어놓고 있습니다. 참 파렴치합니다.

동북아시아 정세급변을 파악한 고이즈미 총리는 서둘러 조일정상회담을 추진하였지만, 동북아시아 정세급변을 파악하지 못한 아베 총리는 일본이 개입할 수 없는 데도 조선의 ‘핵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조일관계를 정상화할 수 없다느니, 미국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주제에 독자적인 대조선제재조치를 발동한다느니, 조선미사일방어훈련을 실시한다느니 뭐니 하면서 한바탕 소동을 피우고, 그 무슨 ‘납치타령’으로 일본의 대조선적대감을 선동하여 재일조선총련에 대한 악랄한 탄압을 자행하면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모든 기회를 다 놓쳐버렸습니다. 곁에서 보기에도 민망할 지경입니다.

이런 사정을 보면, 아베 총리야말로 안보무능에 빠진 사람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안보무능에 빠져 모든 기회를 놓친 아베 총리가 뒤늦게라도 조일정상회담을 성사시킬 수 있는 길은 철지난 ‘납치타령’을 그만두고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지난 시기 고이즈미 총리는 조지 부쉬(George W. Bush) 대통령이 2003년에 조미관계개선을 완전히 파탄시키는 바람에 2002년 9월 17일 평양에서 채택, 발표된 조일평양선언을 이행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아베 총리는 앞으로 평양을 방문하게 되면, 조일평양선언의 기본원칙을 재확인하는 새로운 합의문을 채택, 발표해야 하고 그것을 반드시 이행해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을 이행하고 있으므로, 그 뒤를 따르는 아베 총리가 새로운 조일합의사항을 채택, 발표하는 경우 그것을 이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조일평양선언의 기본원칙이란 조일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일본은 “과거 식민지지배로 인하여 조선인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준 력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통절한 반성과 마음속으로부터의 사죄의 뜻을 표명”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베 총리는 16년 전 고이즈미 총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사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사죄는 말로만 하는 게 아니지요. 식민지지배배상금 400억 달러(4조4,070억 엔)를 조선에게 주어야 하여, 태평양전쟁을 전후로 조선에서 사망한 일본인 유골 약 20,000구를 일본으로 송환하는 대가로 조선에게 9천75만 달러(100억 엔)을 주어야 합니다. 이 막대한 자금은 경제강국을 건설하는 조선에게 비약의 날개를 하나 더 달아주는 것으로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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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죄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2002년 조일평양선언에 명기된 “재일조선인들의 지위문제”를 조선과 “성실히 협의”하여 해결해야 합니다. 이것은 재일조선인들을 억누르는 일본 당국의 악랄한 민족차별정책이 철폐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면, 재일조선인사회는 장차 한반도에 건설되는 통일공화국의 전폭적인 원호를 받으며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이 강물처럼 넘쳐흐르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것이며, 민족교육, 민족문화, 민족경제협력을 급속히 발전시키는 대번영기를 맞이할 것입니다. 

<논점 6> 수구야당의 몰락과 문재인 정부가 내려야 할 용단

강 : 앞으로 싱가포르 조미수뇌회담 공동성명과 판문점 선언이 동시에, 단계적으로 이행되어가는 과정에서 이러저러한 난관들이 돌출할 가능성이 보입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실시된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결선거에서 여당이 수구야당을 누르고 압승을 거두었습니다만, 지난 시기처럼 한국에서 정권이 바뀌면서 남북합의가 실종되는 것 같은 불행한 사태는 더 이상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예견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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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 얼마 전 한국에서 실시된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완패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선거패배가 아니라 몰락입니다. 그들은 선거패배의 후폭풍 속에서 당을 사분오렬시키고, 계파싸움으로 쫄딱 망하게 되었습니다. 

현 정세는 대결에서 화해로, 전쟁위험에서 평화실현으로 급변하고 있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낡아빠진 대결주의에 목을 매달고,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을 향해 감히 도발적인 망발을 토해내고, 싱가폴 조미정상회담마저 반대하였으니, 그처럼 멍청하고 야만적인 수구세력이 민심을 잃어버리고 몰락하는 것은 자업자득의 정해진 이치입니다.

수구세력은 한반도의 정세발전이 낡고 썩은 것들을 쓸어버리는 거대한 사회역사발전이라는 진리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런 까닭에, 민족사의 저변에 오랜 세월 잠재되었던 엄청난 발전동력이 일단 발동되기 시작하면, 진보세력은 전진하게 되고, 그와 반대로 수구세력은 파산과 몰락에 빠지는 법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사회역사발전의 합법칙성입니다.

한국에서 수구정당이 다시 집권하는 길은 영원히 막혀버렸습니다. 한반도의 급격한 정세발전과 근본적인 정세변화가 그 길을 영영 막아버린 것이지요. 그러므로 수구정당이 재집권하여 판문점 선언을 파탄시키거나 그 이행을 방해하는 불행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안심해도 됩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판문점 선언에 서명한 한 쪽 당사자인 문재인 정부가 그 선언을 과연 끝까지 충실히 이행할 수 있을까 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한반도 정세발전이 아직은 시작단계에 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정세발전에 적응하고 있지만, 한반도 정세발전이 본격화되어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주한미국군이 철수하고, 한미동맹이 해체되면 문재인 정부는 그런 급격한 정세발전에 적응하지 못할 것으로 우려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려는 판인데, 문재인 정부는 주한미국군 철수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자기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정치이념적 한계 때문에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역사적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가 통일된 이후에도 주한미국군이 주둔해야 하고, 한미동맹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이제는 버려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정세격변징후를 제대로 파악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국군 철수를 단행하기 전에 한미동맹의존을 청산하고 자주권을 확립하는 용단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끝)


2018.6.22 정리

〔revival〕역사적인 공동선언에 접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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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직후인 2000년 7월 4일, 〈새 천년(2000)과 민족통일〉이라는 주제밑에 도쿄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출연자들이 나눈 이야기의 녹취록을 다시 정리했음.

출연자
정경모 : 씨알의 힘사(일본) 대표
한호석 : 재미 통일학연구소 소장
강종헌 : 재일 한국문제연구소 대표
진   행 : 강민화

존재 명분이 상실된 주한미군

강민화 : 역사적인 남북 수뇌들의 회담과 공동선언에 대해서 정경모 선생님은 이 선언이 조국통일 3대원칙의 재확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강종헌 선생님은 이 선언에 대해서 민족화해 선언이고 민족자주통일 선언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한호석 선생님은 공동선언 실천의 전망과 가능성에 대해서 주체의 운동의 견지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말씀들에 토대해서 공동선언의 내용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공동선언의 첫째 항목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들인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풀어 나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민족자주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평양에서의 수뇌회담이 끝난 이후 보도들을 보면 이 문제를 놓고 ‘외세배격적인 자주’냐 아니면 ‘비배타적인 자주’냐 하는 두가지 해석이 있고, 특히는 주한미군 문제를 놓고 남북간에 무슨 타협이 이루어졌다는 식의 논조도 보입니다. 정경모 선생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경모 : 미국이 군대를 거기(한국)에 주둔시켜놓고 두가지 명분을 걸고 있습니다. 왜 자기네들이 3만 7,000명 병력을 한국땅에 주둔시켜야겠는가, 첫번째는 북조선에 대한 군사적인 억지력, 다시 말해서 북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그것을 억지하기 위해서는 자기네들의 군사력이 필요하다, 그런 논리이지요. 그런데 남북이 앞으로 자주적으로 통일국가를 이루겠다고 남북 정상이 7천만 앞에서 약속했단 말이요.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무슨 명목으로 북조선에 대한 군사적 억지력으로서 3만 7,000명의 병력을 거기다가 유지해야 되겠는가, 제일 첫번의 명분이 붕괴된 것입니다.

또 하나의 명분은 중국과 러시아를 염두에 두면서 동북아시아에 있어서의 힘의 균형, 그것 때문에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그것을 내버려 두겠습니까? 푸틴이 며칠이면 베이징에도 가고 평양에도 간다고 합니다. 이 푸틴, 젊은 대통령이 요즘 미국에 대해서 상당히 강경하게 나오는 것을 보고 아, 이 사람 괜찮은 사람 아닌가 하는 느낌이 가요(웃음).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한다면 미사일 문제로 NMD(미 국가미사일방어체제)를 클린턴이 평양에 대해서 해야겠다고 했어요. 왜냐 하니 북조선이 광명성 1호를 쏘고 말 안들으면 제2호를 쏘겠다고 나왔단 말이요. 그러니까 거기에 대항하기 위해서 NMD라는 것을 만들어야 되겠다, 그건 뭔가 하니 완전히 북조선을 지향해서 떠들고 있는 것인데, 지구 궤도 위에 올라간 다음에는 쏴 떨구기가 괭장히 힘이 드니까 속도가 느린 단계에서 쏴 떨군다는 모양인데, 그것을 자기 나라 알래스카에 설치한데요.

클린턴이 그렇게 말한데 대해서 푸틴은 알래스카에 설치하면 즉각 러시아에도 영향이 온다고 했습니다.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는 벌써 미사일 조약이 있습니다. 쏘면 안된다고. 왜 그런가 하니 방패가 세면 찌르는 힘도 세지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서로 방패는 다치지 말자고 레이건 시대에 소련과 미국 사이에 약속했는데, 그러면 북조선을 빌미로 삼고 NMD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러시아는 절대 반대입니다. 또 중국도 물론 절대 반대이고.

그런데 NMD가 잘 안되는 모양이지요. 하도 반대가 세고 미국안에서도 조선반도 남북의 화해가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무엇때문에 수백억이라는 돈을 거기다 쓰느냐고 반대가 일어났어요. 그래서 아마 그것은 클린턴이 슬며시 취소를 하겠어요.

이렇게 NMD가 슬그머니 없어지는 것을 보면서 아까 이야기한 두가지 명분, 북조선에 대한 억지력으로서도 미군이 거기 있어야 될 이유가 없는 것이고, 또 중국이나 러시아를 적대시하면서 동북아시아에서의 군사력의 균형을 위해서도 3만 7,000명의 미군이 필요하다는 명분이 둘 다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한참 기를 쓸거예요. 절대로 철수는 못하겠다고. 그렇지만 내 생각으로는 철수 하느냐 안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언제 철수하느냐가 문제일 것입니다. 그것이 언제라고 내가 찍어서 말은 못하지만 멀지 않은 장래에 미국은 자기 군대를 철수해갈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강민화 : 감사합니다. 강종헌 선생님은 이 민족자주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종헌 : 김대중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자주란 당사자 원칙입니다. 조선반도 문제는 남과 북이 당사자로서 통일 문제를 다루겠다, 그 정도 차원입니다. 그러나 북이나 해외에서 볼 때 자주라는 것은 반미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분단의 결정적인 원인을 가져다준 것이 바로 미국이었고 지금도 최대의 걸림돌로 되어 있는 것이 미국이기 때문에 자주라고 말할 때 우리는 반외세, 반미라는 말과 직결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외세를 배격하자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외세의 부당한 간섭과 개입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남쪽에서 이야기하는 자주란 낮은 차원의 자주입니다. 지금 남측이 할 수 있는 소리는 낮은 차원의 민족자주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다 포용해서 더 높은 차원의 민족자주로 나갈 수 있겠끔 우리가, 남, 북, 해외가 힘을 합치자는 것입니다. 자주 문제에 대해서 저는 그렇게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부작용 없는 미군철거의 길
한호석 : 저도 주한미군 문제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평양회담을 생중계한 TV방송 화면을 다 보셨을텐데, 거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역사적인 회담장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가운데 앉아 있고, 그 오른쪽에 황원탁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그 왼쪽에는 임동원 국가정보원장이 앉아 있는 장면입니다. 이 두 사람은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군 지휘관 출신, 친미파 관료의 대표주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역 없이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군 장성 출신입니다. 통일문제를 논의하는 그 회담장에 박재규 통일부 장관이 응당 배석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 어째서 군부 출신으로 친미파 관료의 대표주자인 두 사람이 좌우로 앉아 있어야 했는가 하는게 문제입니다.

평양회담이 끝나자 마자 황원탁 외교안보수석은 클린턴의 부름을 받고 백악관에 날아가 회담에 관하여 보고하였습니다. 평양회담이 끝나자 마자 임동원 국가정보원장은 미국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장을 만나 평양회담에 관하여 이야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처럼 백악관, 중앙정보국과 직통하고 있는 친미파 관료가 좌우에 앉아 있는 상황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인 주한미군 문제에 관해서 자신의 구상이나 소신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겁니다.

주한미군 철수문제에 관해서 우리는 김일성 주석이 서거 전에 했던 말씀을 상기해야 합니다. 주한미군이 당장 나가라는 것이 아니다, 주한미군이 언제 나가겠는지 우리에게 약속을 하라, 이것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바로 그러한 김일성 주석의 미군철수안을 김 대통령에게 이야기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작용이 생기지 않게 하면서 주한미군을 철거시키는 깉은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보기에 그것은 남북의 최고책임자가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주한미군이 나가더라도 인민군대가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불가침 약속입니다. 그와 함께 남측도 불가침 약속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호불가침 약속은 이미 1991년의 남북 기본합의서에서 천명된바 있습니다. 그것을 남북의 최고책임자가 책임지고 이행하겠다고 굳게 약속하고 상호신뢰를 가지고 이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주한미군이 단계적으로 철수하더라도 절대로 동족끼리 피를 흘리는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확인했고, 이에 대해서 김대중 대통령도 공감을 표시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한미군 문제를 논의할 때 중요한 점은 주한미군이 무엇때문에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한미군이 전쟁억지력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말이 되지 않는 소리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주한미군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전략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입니다. 주한미군이 동북아시아 지역의 전략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만 그 전략균형은 꼭 주한미군이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유지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한미군이 없어도 그 전략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으며 또 그러한 길을 찾아야 합니다.

주한미군의 진짜 존재 이유는 북조선에 대해서 적대정책을 유지하고 남한에 대해서 지배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적대정책과 지배정책은 돈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이 무너지면 남한에 대한 지배정책도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둘은 하나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각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미국의 적대정책과 지배정책이 없어지면 바로 그것이 자주통일을 실현하는 길이 됩니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영원히 주둔시킬 수 있을까요?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 1990년 4월에 미국은 주한미군 3단계 감축안을 세워놓았습니다. 그리고 제1단계 감축안을 이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감축안을 시행하려 할 때 이른바 ‘북조선 핵문제’가 터져 나오면서 감축안은 백지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감축안은 아주 파기된 것은 아니고 단지 한반도의 정세 때문에 집행을 유예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이제 미국은 평양회담으로 풀리기 시작한 한반도 정세를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주한미군 3단계 감축안을 예정된 대로 즉각 이행해야 합니다. 남과 북이 통일회담을 심화시키면서 연방제통일을 실현하게 되는 단계에 이르고 한반도에서 동족끼리 피를 흘리는 전쟁의 가능성이 사라지는 날이 오면 극소수의 미군을 남겨둘 것이 아니라 한사람도 남김 없이 철수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미국은 남한에서 억지로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체면을 깎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낮은 단계 연방제안과 연합제안의 공통성이란?
강민화 : 민족자주 문제와 함께 중요한 것이 통일방안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선언 2항에서는 북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과 남의 연합제안 사이의 공통점을 서로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한호석 선생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과 연합제안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통일방도가 확정되어 갈까요?

한호석 : 우리 민족은 28년전에 조국통일 3대원칙에 합의했습니다. 7.4남북공동성명에 천명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입니다. 원칙이 나왔으면 이를 수행하는 방도와 방안이 나와야지요.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1994년 6월 하순, 김일성 주석은 서거 직전 약 보름동안에 평양회담을 준비하면서 조국통일문제에 관한 수십차례의 친필교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그 친필교시를 통일문건으로 종합했던 때는 1994년 7월 7일, 서거 직전이었습니다. 그 통일문건은 평양회담이 열리면 그 회담에서 해결해야 할 중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었으므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채택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김일성 주석은 당시 지방에 현지지도차 내려가 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전화통화를 하셨습니다.

그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수령님, 그것은 채택된 것으로 생각하시고 집행하십시오. 정치국 회의에 제출하는 실무적인 일은 제가 맡아서 처리하겠습니다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전화통화였습니다.

그 통일문건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들어있었을까요? 문건은 외부에 공개한 적도 없고, 또 공개할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전연 알 길이 없는데, 거기에는 평양회담이 열리면 조국통일 방안을 합의하는 문제가 들어있을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90년 10월 노태우는 당시 안기부장 서동권이라는 사람을 평양에 몰래 보냈습니다. 1990년은 미국이 주한미군 3단계 감축안을 이행하기 시작한 시점이었습니다. 노태우는 질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한반도 정세의 흐름에 편승해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노태우의 밀사를 만난 김일성 주석은 연방제 통일안을 합의한다면 노태우를 평양에서 만나 평양회담을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연방제 통일안을 합의하지 않고 그저 옥류관 냉면이나 먹고 돌아가려면 평양에 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평양회담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연방제 통일방안을 합의하려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결심은 이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평양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해서 잘 설명한 뒤에 남북공동선언에 포함시키자고 말했습니다.

회담장의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박준영 청와대 댜변인이 나중에 전한 말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웅변조로 김 대통령에게 무엇인가 설명했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 그것은 연방제 통일방안에 관한 설명일 것입니다.

김 대통령은 집권 이전에 자신의 3단계 통일방안에 연방제 통일을 제2단계로 포함시킨 바 있으므로 연방제 통일방안 자체를 반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받아들이고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 하면 회담이 끝난 뒤에 연방제 통일방안을 반대하고 있는 반통일세력으로부터 집중공격을 받을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 반통일세력이란 미국이고 남한의 반통일세력입니다.

그래서 김 대통령은 내가 연방제 통일방안을 합의하고 서울에 돌아가면 김대중이가 북의 통일방안을 받아들이고 왔다고 아우성칠게 아니냐,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고 말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용순 비서와 따로 상의했습니다. 그런 뒤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결론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6.15공동선언에 나와 있는 대로 연합제안과 연방제안의 공통성을 인정하고 그 공통성에 바탕을 두고 통일을 실현하자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그 공통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남북공동선언에는 공통성과 관련해서 구체적인 설명이 나와 있지 아니하므로 남측에서는 자의적인 해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모두 틀린 해석들뿐입니다.

연방제안과 연합제안의 공통성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시 10년 전 1990년 10월에 노태우의 밀사가 평양을 방문했던 사건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 김일성 주석이 연방제 통일방안을 받아들이라고 하셨는데 그 방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밀사는 즉흥적으로 연합제 방안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통일을 한꺼번에 실현할 수 없지 않느냐, 점진적·단계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하면서, 바로 그런 뜻에서 두 방안 사이에 공통성을 찾아보자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두 방안 사이에 있는 공통성이란 통일실현의 점진적, 단계적 측면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통일실현의 점진적, 단계적 측면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그것은 연방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를 점진적, 단계적으로 풀어 간다는 뜻입니다. 나라를 통일하는 문제는 결국 국가주권을 하나로 통일하는 국가주권의 연방화 문제인데, 그것은 결국 연방화의 단계를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점차적으로 높여 간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국가주권의 핵심사항인 군사권과 외교권을 한꺼번에 연방정부가 장악하고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 단계적으로 장악하고 행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통일되면 낮은 단계의 연방에서는 연방정부와 지방정부가 각각 군사권과 외교권을 가지고 있게 될 것입니다. 두 정부가 군사권과 외교권을 각각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연합제안과 연방제안 사이의 공통성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것은 연방정부와 지방정부가 각각 군사권과 외교권을 나누어 가지고 있는 낮은 연방화의 단계라 할지라도 그것은 두개의 주권국가가 아니라 하나의 주권국가라는 사실입니다.

문익환 목사의 방북과  ‘느슨한 연방제’ 합의
강민화 : 방금 연방제으 점진적, 단계적 실현이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정경모 선생님은 문익환 목사님님의 방북에 동행하셨습니다만 그때 김일성 주석님과 문익환 목사님 사이에서, ‘느슨한 연방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때 문 목사님과 함께 계셨던 선생님으로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정경모 : 이 이야기를 하려면 문 목사와 김대중씨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이제까지 말 안한 것을 비로소 내가 이야기합니다.

문 목사가 평양 가기 전에 김대중씨와 굉장히 깊이 이야기를 하고 갔습니다. 문 목사는 억울하게 3년동안 징역살이 했는데 김대중씨도 국가보안법에 걸리는 일을 했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김대중씨하고 이야기하면서 간다고 했지요. 정경모가 중간 역할을 해서 평양에 간다고. 그러니까 김대중씨가 잘 갔다 오라고 그때 돈으로 10만원짜리 자기 앞수표를 서른장 주었어요. 굉장히 큰 돈입니다. 그래서 문 목사는 김대중씨한테서 여비까지 받고 평양에 간 것입니다.

왜 그럼 김대중씨가 문 목사에게 여비까지 주었는가. 둘 사이에서 김 주석께서 말하는 연방제에 대해서 남쪽의 현상을 가만히 두고 어떻게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가를 두 분이 아마 굉장히 깊이 이야기한 다음에 갔을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문 목사한테서 들은 이야기인데, 김 주석의 연방제안을 2단계로 인정하고 우선 연방제를 만들고 연방정부가 군사, 외교권을 쥐고 두개 지역정권, 지방자치체를 두자, 말하자면 이것은 미국식 연방제예요. 워싱턴에 있는 미국 연방정부가 군사와 외교권을 쥐고 있습니다. 미국은 지금 50개의 주마다 주 정부가 있습니다.

그래서 김 주석이 말씀하신 것은 이 미국식 연방제를 단꺼번에 하자는 것시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문 목사는 아마 김대중씨 이야기를 받아서 이야기했을 것인데, 그는 처음부터 3단계를 이야기했어요. 평화교류, 평화협력, 평화통일로 가자는 것인데 그 연장선 위에서 아마 문 목사는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단꺼번에 연방제로 가기는 상당히 힘들다고.

김대중씨도 연방정부에 대해서 반대한 것은 아니예요. 그의 의도는 연방정부를 하되 연방정부가 처음부터 군사,  외교권을 쥐는 것이 아니라, 그 대신 유엔에 대해서는 한 집안이라는 문제를 걸고 한 나라로 돌아간다, 남북이 합의했을 때는 투표도 하고 남북의 의견이 같지 않을 때는 기권하는, 그런 식으로 우선 문제를 걸어 놓고 유엔에는 같이 들어가자고 생각을 했을테지요.

그러니까 김대중씨의 의견을 받아가지고 문 목사는 남쪽의 사정으로 볼 때 도저히 단꺼번에는 힘들다고, 그래서 김일성 주석에게 한 나라라는 것을 상징하게 유엔에는 같이 들어가고 군사, 외교권은 남북이 따로 따로 갖는다, 우선 교류와 협력의 기간을 두자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때 김 주석께서는 교류나 협력이나 하고 이산가족도 만나고 돈벌이도 하고 하면 됐잖으냐, 통일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 하는 이야기가 남쪽에서 굉장히 나올 때 북쪽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 그것은 곤난하다,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 분이 여러가지 생각한 끝에 주석께서 그럼 좋다, 그럼 3단계를 내가 받겠다, 단꺼번에 할 수도 있고 점차적으로 할 수도 있다고 하셨답니다. 그러니까 김 주석께서는 그 당시에 벌써 문 목사를 통해서 김대중씨의 의견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3단계로 가자, 이 3단계가 ‘느슨한 연방제’입니다.

이번에 김대중씨와 김정일씨가 만나서 ‘느슨한 연방제’에 대해서 말하면서 공통점을 발견했다는 것은 벌써 11년 전에 돌아가신 김 주석과 문 목사하고의 이야기 때문에 그것이 굉쟝히 쉽게 달성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김대중씨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각한 ‘느슨한 연방제’가 뭔가, 제 생각으로는 앞으로 있을 경제협력 또 여러가지 교류와 굉장히 관련이 되어 있다고 봅니다.

경제협력 이야기가 있었는데, 경제협력이란 인프라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도로, 통신시설, 항만,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철도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만 해도 거대한 자금이 들어요. 제가 듣기에는 남쪽이 경제성장 했다고 하지만 굉장히 취약한 경제력이니까 이북과의 경제협력을 위해서 쓸 수 있는 돈이 8억달러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철도망, 도로망까지 포함하면 80억달러라도 모자랄 것이지요. 그럼 앞으로 일본사람하고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지 문제가 되는데, 그런 거대한 경제협력을 하기 위해서는 남북이 같이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경제협력, 문화교류, 이런 것을 하려면 단독으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하면 자연발생적으로 연합정부가 되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김일성 주석이 말씀하셨습니다. 단꺼번에 연방정부가 생겨서 연방정부가 단꺼번에 군사, 외교권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든 얘기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경제교류가 시작되고 문화교류가 시작되고 여러가지 교류가 시작이 되면 북과 남을 연결시키는 공동기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석께서 말씀하신 군사권과 외교권을 쥐는 연방정부에 선행하는 그런 기구가 되겠지요. 그것이  ‘느슨한 연방제’가 되는 것 아닙니까?

2854년을 감옥에서 보낸 비전향장기수들
강민화 : 이번에는 강종헌 선생님이 통일운동과 결부해서 이 문제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강종헌 : 평양선언 제2항에서 남북의 통일방안에 공통성이 있다, 그렇게 됨으로써 지금까지 남쪽에서는 연방제를 주장하면 국가보안법에 걸렸는데 연방제가 전 민족적인 지지와 승인속에 합법성을 쟁취했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사실 서로 상대방을 인정 안하고 자기 하는 대로만 통일하겠다고 하니까 분단이 계속되었습니다. 50년동안 7.4남북공동성명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남쪽에서는 통일을 위해서 북과 연대하겠다, 북은 적이 아니다, 우리 동포다, 이런 주장을 하면 다들 잡혀가서 죽거나 오랜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정경모 선생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김구 선생, 여운형 선생, 그리고 조봉암 선생, 그런 민족주의 지도자들이 북과의 연대나 통일을 주장했기 때문에 비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런 분들 말고도 통일을 위해서 불모의 땅에 씨를 뿌리고 또 물을 주고 거름을 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름 없는 용사들이 38선을 넘고 넘나들면서 통일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1960년도에 4.19혁명이 일어나고 그때부터 30년동안, 90년까지 감옥에서 사형이 집행된 투사들이 200명을 넘습니다. 그러한 희생속에 통일의 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희생되지 않더라도 30년, 40년이라는 엄청난 세월을 지조를 지키고 통일을 위해서 생애를 바치신 분들이 많았지요. 그 분들이 모두 다 아, 내 생각이 잘못했다. 당신 하는 말이 옳소, 북이 잘 못했고 남이 옳았다, 그런 식으로 했으면 연방제가 가능합니까? 가능하지도 않지요. 그러나 남쪽에서 지조를 지킨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남쪽 사회에서 민주화운동이 진전되면서 소위 말하는 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이 하나씩 풀려 나왔습니다. 다행히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후에 감옥에 남아 있던 장기수 언르신들이 모두 풀려 나왔습니다. 지금 파악되는 분들 중에 제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94명 분들이 1980년대 말부터 작년까지 석방되셨답니다. 그러나 거의 모두가 오랜 감옥생활 때문에 병드시고 또 연령도 70세를 넘은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해마당 몇분씩 돌아가십니다. 94명중 지금 남아 계시는 분들이 77명이라고 합니다. 그중에 가족들이 기다리는 북에 돌아가기를 원하시는 분들이 59명입니다. 이 분들이 이번에 지난 적십자회담 합의에 따라서 9월 초에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의 품으로 가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번 평양회담과 평양선언에 많은 의의가 있지만 저는 이 이름없는 영웅들이 인간으로서의 시간을 회복하게 만든 이 합의에 대해서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박수)

제가 존경하는 분 가운데 비전향장기수의 한 분이신 신인영 선생이 계십니다. 그 분은 32년을 감옥에서 보내셨습니다. 참고로, 나오신 94명의 비전향장기수분들이 감옥에서 보내신 세월을 전부 합하면 몇년이 되는지 아십니까? 2천 854년입니다 (장내에서 한숨 쉬는 소리). 한사람당 평균 31년이 됩니다. 우리가 5처년 역사라고 합니다만, 그 반 이상을 그 분들은 한해 한해씩 통일을 위해서 견디셨습니다. 기막힌 세월이지요. 그 32년을 감옥에서 보내신 신인영 선생은 남쪽출신이고 사회주의 이념을 따라서 6.25때 북으로 가셨고 통일을 위해서 다시 되돌아 오셨습니다.

조선반도의 분단선이 단지 판문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쪽 감옥이 분단의 최전선입니다. 그 분이 이번 평양회담 며칠전에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오래 오래 껴 안았으면 좋겠소, 남의 힘 빌리지 않고 우리 힘으로 일구는 통일의 첫 결실이었으면 좋겠소.”

저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마지막에 뜨겁게 포옹하신 장면을 보면서 이 말씀이 머리에 떠 올랐습니다. 그 분이 염원한 대로 두 정상이 오래 오래 껴 안았습니다.

연방제 통일을 위해서는 어느 한쪽이 모든 고난을 이겨내면서 자기 신념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반세기였습니다. 그러나 그 분들의 노고가 이제야 우리 모두의 축복속에 보답받게 되었다, 저는 통일 방안의 합의에 대해서는 그런 감격을 금할 수 없습니다.

통일을 위해 민족의 힘과 슬기를 모아야 한다
강민화 : 예, 참으로 감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모든 선생님들이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데 시간이 무정하게 흘러갑니다. 이제 꼭 한사람분의 발언시간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발언 시간을 멀리 미국에서 오신 한호석 선생님께 드리려고 합니다. 그럼 한호석 선생님, 마지막에 앞으로의 전망과 우리가 통일을 위해서 할 일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한호석 : 매우 어려운 질문입니다. 이야기는 다시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김일성 주석의 조국통일유훈 가운데 하나는 끊어진 남북의 철도를 연결하는 사업이었습니다. 이는 제가 여기 앉아 계시는 정경모 선생님이 쓰신 글을 통해서 알게 된 내용입니다. 김일성 주석은 끊어진 철도가 이어지는 날, 첫 남행 통일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리시겠다는 구상을 하셨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조선노동당은 이 통일유훈을 한 점, 한 획도 바꾸지 말고 이행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평양회담에서는 남북의 철도연결 사업이 합의되었습니다.

지금 남측은 남북 철도 연결사업을 경제적 관점에서만 보고 있지만 북측에서는 주석의 통일유훈을 관철하는 관점에서 보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을 출발하기에 앞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꼭 서울을 방문하시도록 요청했습니다. 그 청을 받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자신이 서울에 가기 전에 다른 국가 고위간부가 먼저 서울을 답방한 뒤에 가겠다고 말했다 합니다.

남북공동선언은 7천만 민족 앞에서 엄숙히 서약한 약속입니다. 서울회담에서는 그 약속을 얼마나 이행하였는가를 총화하면서 통일 정세를 다음 단계로 전진시키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당면한 과제는 연방제통일 실현을 하루라도 앞당기기 위해서 반통일세력의 간섭과 개입을 차단하고 방해를 배격해야 하는 데로 집중됩니다. 이를 위해서 7천만 민족이 힘과 슬기를 모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본국 동포와 해외동포의 구별이 있을 수 없고 남녀노소의 구별, 계급계층의 구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민족의 피를 받고 태어난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통일정세가 나날이 변화되고 있는 오늘 조국통일의 길 위에 걸림돌이 있으면 하나라도 걷어 내고 디딤돌을 만들어 하나라도 더 놓아가면서 하루빨리 분단의 민족적 재난과 불행에서 벗어나는 길로 전진해야 합니다.

자주강국, 경제부국, 문화대국의 연방통일국이 삼천리 강산에 세워지는 날, 위대한 조국 만세, 위대한 민족 만세를 부를 수 있도록 함께 힘써나가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강민화 : 역사적인 평양회담 직후에 내외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속에서 개최된 오늘 토론회입니다만, 사실 시간이 너무나도 제한되고 또 저희들 운영상의 미숙함 때문에 여러분들의 기대에 충분히 보답해 드리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남북공동선언이라는 통일의 이정표가 마련된 오늘, 우리가 이번 사변을 어떻게 보아야 하며 또 앞으로 통일정세는 어떻게 흘러가겠는가 하는데 대한 세 선생님들의 귀중한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신심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토론회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통일운동을 힘차게 벌여 나가는데서 매우 중요한 계기점이 되었다, 이렇게 확신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여러분, 세 선생님들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주십시오.(2017.4.1다시 정리)


〔대담〕급진적 정세변화 속에서 들려온 조선의 승리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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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11월 미국 뉴욕 맨허튼에서(왼쪽이 한호석 소장)

이 대담록은 2016년 10월 3일 일본 도쿄에 있는 대동연구소의 요청에 의해서 이 연구소 강민화 소장과 미국 뉴욕의 통일학연구소 소장 한호석 박사가  이메일을 통하여 진행한 최근 정세에 관련한 대담 내용이다.

정세변화에 비춰보는 조선의 승리선언의 의미

강민화 :  <로동신문> 2016년 9월 26일부 에 “우리는 조미대결에서 또다시 승리하였다”는 제목의 논설(이하 9.26논설)이 실렸습니다. 조선이 지난 9월 9일에 진행한 제5차 핵시험으로 미국의 핵몽둥이를 순간에 꺾어버릴 수 있는 핵철퇴를 가지게 되었으며, 미국과의 힘의 대결에서 상대방을 완전히 압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주변을 보면 이번 핵시험 역시 북의 ‘위반’이나 ‘도발’로 선전되고 이에 대해서 앞으로 유엔안보리에서 또 어떤 제재를 가할 것인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인식입니다. 이러한 때에 나온 조선의 승리선언에 대해서 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호석 : 아시다시피, 조선과 미국의 대결은 6.25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격렬한 대결입니다. 6.25전쟁은 3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그 전쟁양상을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격렬하였습니다. 전쟁의 격렬성을 비교한다면, 6.25전쟁은 베트남전쟁보다 훨씬 더 격렬하였습니다.

그처럼 격렬했던 6.25전쟁이 종식되지 못하고, 어느 순간에 전쟁이 재발할지 알 수 없는 위험천만한 정전상태를 유지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정전의 장기화야말로 정녕 가슴 아픈 일이며,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는 것은 오늘 우리 민족 전체에게 주어진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임무입니다.

그런데 전쟁당사자인 미국은 언제 또 다시 전쟁이 재발할지 알 수 없는 위험천만한 정전상태를 끊임없이 유지하면서 핵공갈과 핵위협으로 교전상대인 조선을 상대해왔습니다.

정전 첫 날이었던 1953년 7월 28일부터 조선이 첫 핵시험을 진행하였던 2006년 10월 9일까지 장장 53년 동안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벌어진 정치군사대결은 비핵국가(조선) 대 핵무장국(미국)의 불균형한 대결이었습니다.

핵무기는 절대무기이므로, 재래식 무기를 가지고서는 대결상대의 핵공갈과 핵위협에 맞서 싸울 수 없습니다. 인류 전체를 1,340번이나 몰살시킬 엄청난 핵무기를 가진 깡패국가 미국이 하루가 멀다 하고 조선에게 핵공갈과 핵위협을 계속해오는 위험한 정전상태에서 조선은 자위적 핵무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조선은 2006년 10월 9일 첫 핵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함으로써 자위적 핵무장을 갖추었음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이것은 조선과 미국의 정치군사적 대결이 비핵국가 대 핵무장국의 불균형한 대결구도에서 핵무장국 대 핵무장국의 균형적인 대결구도로 바뀌었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핵무장국이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핵능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조선보다 반세기 전에 핵무장을 시작한 미국은 조선의 핵능력보다 훨씬 우세한 핵능력을 가졌습니다. 조선과 미국의 정치군사적 대결이 핵무장국 대 핵무장국의 균형적인 대결구도로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핵능력에서는 불균형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조선이 첫 핵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여 명실공히 핵보유국의 지위를 갖게 되었는데도, 오만방자한 미국은 조선의 핵능력을 깔보면서 여전히 핵공갈과 핵위협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래서 조선은 자기의 핵능력을 질량적으로 더욱 강화, 발전시키는 데 박차를 가해야 했습니다.
 
올해는 조선이 첫 핵시험을 진행한 때로부터 꼭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지난 10년 동안 조선의 핵능력은 얼마나 더 높은 수준으로 강화, 발전되었을까요? 2016년 9월 9일 조선이 진행한 핵시험의 놀라운 결과가 그 물음에 정확한 대답을 주었습니다.

조선핵무기연구소가 핵시험 당일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조선이 폭발시험에 사용한 핵탄두는 “표준화, 규격화된 핵탄두”라는 것입니다. 핵탄두를 표준화, 규격화하였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표준화되고, 규격화된 각종 핵탄두들을 생산하여 각종 타격수단들에 널리 장착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조선은 핵탄을 규격화하여 특대형, 대형, 중형, 소형, 극소형 다섯 종으로 생산하고, 핵탄을 표준화하여 핵탄두, 핵폭탄, 핵어뢰, 핵기뢰, 핵가방 다섯 종으로 생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그 동안 수집한 각종 정보자료들을 분석하여 내린 판단입니다.

조선이 그처럼 핵탄을 표준화, 규격화하여 생산한다는 말은 조선의 핵무장이 완성되었다는 뜻입니다. 2016년은 조선의 핵무장이 완성된 해입니다.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올해 조선은 핵보유국의 지위를 뛰어넘어 핵강국의 지위에 올라섰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은 첫 핵시험을 진행한 때로부터 지난 10년 동안 핵무력강화사업을 힘있게 추진하여 마침내 핵강국의 지위에 올라선 것입니다. 요즈음 조선의 언론매체들이 조선을 가리켜 ‘동방의 핵강국’또는 ‘자주의 핵강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러한 지위상승에 대해 언급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국은 일본이나 독일 같은 친미추종국들이 독자적으로 핵무장을 하지 못하도록 2중, 3중으로 차단막을 세워놓고 면밀히 감시해왔습니다. 그 대신 미국은 친미추종국들을 크고 든든한 ‘핵우산’으로 보호해준다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런데 만일 미국이 펼쳐놓은 ‘핵우산’에서 이탈한 어떤 친미추종국이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하는 경우, 미국은 즉각 폭력적인 정권교체로 그 친미추종국의 핵무기개발을 저지, 파탄시켰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유신독재자의 비참한 최후가 그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친미추종국들의 핵무기 개발도 그처럼 폭력적으로 봉쇄하는 미국이었으니, 반미적대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하면, 무력침공을 해서라도 그것을 저지, 파탄시키려고 하였습니다. 미국이 반미적대국의 핵무기개발을 저지, 파탄시키는 것은 저들의 국력을 총동원하여 추진하는 최대의 국가안보문제로 됩니다.

그런데 반미적대의 수준을 넘어서 언제 전쟁이 다시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정전상태에 있는 조선이 미국의 핵무기개발저지선을 여유 있게 돌파하여 핵보유국의 지위에 올라섰을 뿐 아니라, 그로부터 10년 만에 ‘동방의 핵강국’으로 등장하였습니다. 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이것은 미국과의 대결에서 완전한 승리를 이룩한 것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지속되어온 조미핵대결은 조선이 완승하고, 미국이 완패하는 것으로 제1막을 내렸습니다. 이제 제2막이 시작됩니다. 제1막에서 조선이 완승하였으므로, 조선의 전략적 지위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극에 달한 미국의 반아시아적 대결광기

강 : 새삼스럽게 지금의 대북제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본래부터 로켓발사나 핵시험과 같은 주권행사에 속하는 행동을 유독 조선에 대해서만 금지한 유엔안보리 결의 자체가 부당하며, 이를 위반했다고 해서 가해지는 제재 역시 타당성이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강경한 내용이라던 유엔안보리 결의 2270도 결국 이번 5차 핵시험으로 아무런 효력도 의미도 없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이나 서울, 도쿄에서는 동북아시아 정세의 악화 원인이 조선에 있는 것처럼 말하고 심지어 조선의 미사일과 핵이 일본의 군국화를 촉진시키고 있다는 말까지 들려왔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한 : 오늘날 동북아시아 정세가 날이 갈수록 자꾸만 격화되는 원인은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중시정책에서 찾아야 합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는 아시아중시정책이라는 것은 말로는 아시아를 중시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죄다 새빨간 거짓말이고, 실제로는 태평양과 아시아대륙을 통째로 미국의 발밑에 묶어두려는 반아시아적 대결광기의 발로입니다.

미국의 반아시아적 대결광기에는 역사가 있습니다. 지난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오늘까지 근 150년 동안 미국은 태평양을 자기의 내해(內海)로 만들고, 아시아대륙까지 자기의 식민영토로 만들려고 온갖 술책과 폭력을 다 자행하였습니다. 제1단계에서는 필리핀을 식민지로 만들었고, 제2단계에서는 아시아대륙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반도를 식민지로 만들려고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살펴보면, 오늘날 조선의 핵무장이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촉진시키는 게 아니라, 미국의 반아시아 대결광기가 아베 정권을 폭력적인 군국주의로 떠밀어주고 있으며, 조선을 자위적인 핵무장으로 떠밀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의 반아시아적 대결광기는 크게 세 갈래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첫째, 미국은 조선에 대한 선제핵타격능력을 계속 강화하면서, 미국-일본-한국 3각 군사동맹체제를 수립하고, 조선에 대한 다국적 경제제재를 더욱 가증시켜 조선을 고립압박하려는 대결광기입니다. 

둘째, 미국은 일본과 한국에 침공무력을 증강, 배치하고,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 3각 군사동맹체제를 수립하고, 베트남과 필리핀을 대중국포위망으로 끌어들여 중국의 동중국해, 남중국해 진출을 가로막으려는 대결광기입니다.

셋째, 미국은 일본 자위대 증강을 지원해주고, 일본의 군국주의체제를 부활시켜 동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려는 대결광기입니다.

150여 년 전부터 지속되어온 미국의 반아시아적 대결광기는 박근혜 정권과 아베 정권을 대결돌격대로 내몰고 있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박근혜 정권은 미국이 폭력과 강압으로 지배하는 제국주의세계체제의 아시아판에 자발적으로 복속되어 정권의 안전을 보장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국과 박근혜 정권의 관계 속에 깊이 은폐된 본질은 그 무슨 동맹관계가 될 수 없으며, 항구적인 지배와 자발적인 복속을 존재방식으로 하는 봉건적 군신관계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황제에게 세자책봉을 받아야 했고, 중국 봉건왕조에게 해마다 조공을 바쳐야 했고, 중국 봉건왕조의 군력에 의존하여 자기의 안전을 보장받았던 중국 주변왕조들에게 오래 기간 유전되었던 굴욕의 유전자(DNA)가 21세기에도 퇴화되지 않고 박근혜 정권의 사고와 행동을 전반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난날 세자책봉은 오늘날 비밀선거공작으로, 지난날 조공은 오늘날 불평등한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지난날 군력의존은 오늘날 작전통제권 헌납으로 되고 말았습니다.

조미평화협정은 미국의 반아시아 대결정책을 파산시킬 파열구

강 : 9월 26일부 〈노동신문〉에는 또한 “조선의 승리는 과학이라”는 제목의 정론이 실렸습니다. 여기에는 “…조선의 이름과 전략적 지위가 완전히 바뀌는 역사의 화산분출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9.26논설에서 본 승리선언도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정책이 총파산되었다는 의미가 있겠지만 동시에 이 같은 보다 넓은 시야에서의 자신감이 작용되어있지 않겠습니까?

한 : 주목되는 것은, 미국의 반아시아 대결광기의 정책적 실체인 이른바 아시아중시정책이 미국의 ‘전략적 인내’정책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략적 인내’정책은 반아시아 대결정책에서 중핵으로 됩니다.

그런데 미국의 ‘전략적 인내’정책이 완전히 파산되고 말았습니다. 그 정책이 완전히 파산되고 말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미국의 조선문제전문가들도 공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정책이 파산되었다는 것은 미국의 아시아중시정책의 한복판에 큰 파열구가 뚫렸음을 의미합니다. ‘전략적 인내’정책이 파산된 것처럼, 아시아중시정책도 머지않아 결국 파산될 것입니다. 한복판에 큰 파열구가 뚫린 아시아중시정책에 매달려 제국의 체면이나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미국이 앞으로 버틴다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습니까.
 
‘전략적 인내’정책은 어떻게 지나다가 어느 날 우연히 파산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명백하게도, 조선이 자기 힘으로 그 정책을 완전히 파산시킨 것입니다. ‘전략적 인내’정책을 파산시킨 조선의 힘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미국의 ‘전략적 인내’정책을 완전히 파산시킨 조선의 힘은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숙명적인 대결에서 사회주의가 승리한다는 사회역사발전의 불변부동의 법칙을 믿으며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말라’는 투쟁구호를 들고 싸워온 사상정신적 역량입니다. 또한 조선의 힘은 미국이 제아무리 강대한 제국이라 해도, 2,500만 군대와 인민이 최고영도자를 중심으로 단결하여 끝까지 싸워 이긴다는 최후승리를 향한 자주적 정치역량입니다. 또한 조선의 힘은 그런 최후승리를 앞당기기 위해 최후결전을 준비해놓고 총돌격명령을 대기하고 있는 혁명적 군사역량입니다.
 
위에 열거한 사상정신적 역량, 자주적 정치역량, 혁명적 군사역량이 집합되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발생시켰던 것인데, 바로 그런 엄청난 에너지가 미국의 ‘전략적 인내’정책을 완전히 파산시켰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의 아시아중시정책은 언제, 어떻게 파산될 것으로 예견할 수 있겠습니까?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과 미국의 갈등이 중국의 승리로 결속될 때, 아시아중시정책이 파산될 수 있을까요? 그런 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중국과 미국의 갈등은 어느 한 쪽이 승리하고 다른 한 쪽이 굴복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미국은 자기들이 겪는 갈등이 물리적 충돌로 격화되지 않게 하는, 발달된 자율조절신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미갈등이 위험계선에 근접하면 곧바로 타협하거나 위기요인을 봉합하는 재빠른 수습행동을 취하곤 합니다. 그러므로 중국과 미국의 갈등은 물리적 충돌로 폭발하지는 않을 것이고, 중국은 미국의 아시아중시정책을 견제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미국의 아시아중시정책을 파산시킬 힘이 중국에게서 나올 수 없다면, 그 힘이 나올 수 있는 곳은 조선밖에 없습니다.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미국이 조선에게 굴복하여 조미평화협정이 체결되는 날, 미국의 아시아중시정책은 파산될 것입니다.

조미평화협정은 조미협상으로 체결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6자회담 따위는 더욱 아닙니다. 협상탁자에 앉아 점잖게 말로 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조미평화협정은 조선이 힘으로 미국을 굴복시킬 때에만 체결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정책을 완전히 파산시킨 조선의 힘, 최후결전을 벼르는 조선의 힘, 자위적 핵무장을 완성한 조선의 힘,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말라’는 혁명구호를 외치는 조선의 힘이 오늘 준비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 엄청난 힘은 핵공갈과 핵위협에 중독되어 평화협정을 한사코 외면해온 깡패제국을 굴복시킬 것이며, 그로써 아시아중시정책의 한복판에 큰 파열구를 뚫어놓을 것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시한 새로운 통일방략

강 :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시한 조국통일방침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민족자주, 민족대단결, 평화보장, 연방제통일의 방침 또한 당면과제로서의 남북관계개선이라는 내용에 대해서는 여기서 새삼스럽게 재론하지 않겠습니다. 문제는 이 배경에도 선대수령들의 통일방침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 및 그 관철 의지와 함께 보고에서 지적된 것처럼 우리 민족은 외세에 나라를 빼앗기고 망국과 분열을 강요당했던 어제날의 약소민족이 아니며 자기 힘으로 조국통일을 실현하고 미래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슬기롭고 힘있는 민족이라는 자신감이 작용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보고에서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는데는 평화적 방법과 비평화적 방법이 있다면서 평화적 통일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지만 상대방이 끝내 제도통일을 고집하고 전쟁을 길을 택한다면 정의의 통일대전으로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성취할 것이라고 선언한 내용을 보고 그 같은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보고에서 제시된 통일방침을 새로운 통일방략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 :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새로운 통일방략에서 핵심적인 내용은 조국통일의 평화적 방도와 비평화적 방도를 서로 대치시키지 않고 전일적으로 합치시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해석입니다만, 평화통일과 통일대전의 전일적 합치, 바로 이것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새로운 통일방략에서 핵심명제로 된다고 나는 해석합니다.

이전 시기에는 조국통일방도를 논할 때 평화통일이냐 통일대전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이제는 평화통일과 통일대전이 전일적으로 합치되는 새로운 통일방략이 제시된 것입니다.

양자의 전일적 합치는 논리적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조선에서 말하는 통일대전이 승리하여 반통일세력을 제압할 때, 곧바로 남과 북이 평화통일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통일대전에서 승리하여야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의거한 평화통일이 실현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조선에서 말하는 통일대전이 6.25전쟁처럼 혹심한 전쟁피해를 주는 전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만일 우리 민족이 통일대전으로 혹심한 전쟁피해를 입게 된다면, 조선은 절대로 그런 통일대전을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조선이 말하는 통일대전은 72시간 안에 속결되는, 세계전쟁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전쟁으로 될 것이며, 그로써 전쟁피해를 극소화하는 새로운 양상의 전쟁으로 될 것입니다. 군사학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좀 과장된 표현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언제 개전해서 언제 결속되었는지 잘 모를 정도로 교전상대의 급소만 정확하게 찔러 순식간에 제압해버리는 그런 전쟁이 바로 조선에서 말하는 통일대전입니다.

이것은 나의 주관적인 해석이 아닙니다. 오랜 기간 수집하고 심층적으로 분석한 군사정보를 근거로 하여 객관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조선에서 말하는 통일대전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분석한 나의 글들은 이미 이전에 여러 차례 발표된 바 있으므로, 여기서 재론하지 않겠습니다.

72시간 초단기속결전을 수행할 작전능력을 갖지 못했던 이전 시기에 조선에서는 평화통일과 통일대전을 전일적으로 합치시킨 통일방략이 수립될 수 없었지만, 조선은 올해 2016년에 자위적 핵무장을 완성함으로써 그런 작전능력을 갖게 되었으므로 이제는 평화통일과 통일대전을 전일적으로 합치시킨 새로운 통일방략을 수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조선로동당 7차 대회에서 발표한 새로운 통일방략은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정보를 가지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68년 만에 연석회의를 다시 제안한 조선

강 : 7차 당대회에서 제시된 통일방략이 우리 민족은 핵을 보유한 슬기롭고 힘있는 민족이라는 자신감에 기초한 것이라면 당연히 이 방략을 실현하기 위해서 조선에서 ‘조선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북, 남, 해외 제정당, 단체, 개별인사들의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를 제안한데 대해서도 그같은 시각에서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연석회의에서는 민족의 총의를 모아 최악의 상태에 있는 조선반도의 현 정세를 완화하고 남북관계를 새 출발시키며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출로에 대하여 허심탄회하게 론의하겠다고 합니다만, 또 한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조선이 6월 9일에 연석회의를 호소한 정당, 단체 연석회의 호소문에는 “북남관계와 조국통일의 앞길에 찬란히 서광이 비치는 오늘의 중대기로”라는 구절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 : 그렇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새로운 통일방략에 따르면, 남, 북, 해외 연석회의 소집은 72시간 만에 속결될 통일대전 직후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첫 공정으로 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평화통일은 남과 북이 서로 상대의 사상, 이념, 체제를 인정한 기초 위에서 정치협상을 통해 연방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이 바로 그런 평화통일경로를 밝혀주었습니다.

그런데 연방통일국가를 건설하려면, 통일의회를 구성하고, 통일헌법을 제정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하고, 통일국가를 선포해야 합니다. 이 모든 정치일정은 6개월 안에 끝마치게 될 것입니다. 조국통일은 그렇게 꿈처럼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국가 건설에서 첫 공정으로 되는 통일의회는 어떤 방식으로 구성될 수 있겠습니까? 남, 북, 해외에서 정치적, 조직적 대표성을 가진 각계각층 각당각파 인사들이 연석회의로 모여 통일의회를 구성하자고 의결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 이외에 어떤 다른 방도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연석회의 소집은 통일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준비사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논의의 이 지점에서 우리는 분단시대에 우리 민족이 간직한 소중한 역사적 경험을 상기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1948년 4월 하순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역사적인 남북연석회의가 소집되었습니다. 그 연석회의는 남과 북의 각계각층 각당각파를 정치적, 조직적으로 대표하는 인사들이 모여 민족의 자주적 통일역량을 총결집시킴으로써 미군정과 이승만독재정권의 5.10 단독선거를 저지, 파탄시키고 통일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목적으로 긴급히 소집된 것입니다. 하지만 미군정과 이승만 독재정권은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하려는 남측 대표자들의 북행길을 가로막았고, 그들을 탄압하였으며, 조국분단과 민족분열을 결정적으로 고착시킨 5.10 단독선거를 남북연석회의 며칠 뒤에 폭력적으로 강행하였습니다. 이처럼 거세찬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남북연석회의 소집은 조국통일운동사에서 거대한 역사적인 의의를 가지게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그것이 통일독립국가건설의 첫 공정으로 연결되지는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1948년이 아니라 2016년입니다. 정세는 근본적으로 달라졌고, 상황도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올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평화통일과 통일대전을 전일적으로 합치시킨 새로운 통일방략을 발표하였고, 곧이어 남, 북, 해외 연석회의를 개최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올해 북이 제기한 연석회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새로운 통일방략에 따라 추진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통일세력은 연석회의에 참가하지 못한다

강 : 그런데 지금 박근혜 정부는 어리석은 행동만 고집하고 있습니다. 북측은 그들을 통일의 동반자라고 부르면서 남북관계개선을 제의했지만 그들은 우리 민족끼리 해결해야 마땅한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외 각국 여기 저기 들고 다녔다가 비웃음을 샀고, 지금도 오기를 부리며 대북제재에서 앞장서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런 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해서 과연 연석회의가 가능하겠는가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에 중국 선양(瀋陽)에서 열린 남, 북, 해외 접촉에서는 어려운 상황에서 정세의 포로가 되지 말고 오히려 정세를 성숙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되었다고 합니다. 이같은 이야기를 듣고 나는 비록 당초에 목표로 내세운대로 연석회의가 8월에 열리지 않았지만 앞으로 연석회의를 성사시키기 위해 남, 북, 해외가 계속 공동으로 노력하는 문제를 한국의 민주진보세력의 강화와 대선까지 염두에 두고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고 느껴졌습니다.

한 : 지금 조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새로운 통일방략을 실현하기 위한 첫 걸음으로 연석회의 소집을 추진하고 있습니다만, 반통일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연석회의는 통일염원과 통일의지를 가진 세력들이 참가하는 정치회합이므로, 반통일세력은 연석회의 참가대상에서 당연히 제외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며칠 전 연설에서 북측 인민들에게 탈북을 권유하였습니다. 그가 탈북을 공개적으로 권유한 것은 북의 정권을 붕괴시키려는 대결주의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것입니다. 그 이상으로 극단적인 발언은 아마 하기 힘들 겁니다. 북은 자기의 정권을 붕괴시키려는 상대와 마주 앉지도 않겠거니와, 설령 마주 앉았다고 해도 무엇을 합의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날 유신독재자는 7.4 공동성명에 서명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그 성명을 부인하였고, 통일을 염원하는 남측의 진보세력을 무자비하게 짓눌렀으며, 콘크리트 분단장벽을 세워 삼천리 강산의 지맥까지 끊어버리는 영구분단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오늘날 유신독재자의 딸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였고, 통일을 지향하는 남측의 진보세력을 무자비하게 억누르고 있으며, 콘크리트 분단장벽 위에 대북심리전확성기를 틀어놓는 전면대결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하고, 불의는 반드시 멸망한다는 역사의 진리는 조국통일운동사에 그대로 관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아니, 그저 아는 것에 그친 게 아니라, 신념으로 믿고 있습니다. 정의의 조국통일운동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며, 불의한 반통일세력은 반드시 멸망할 것입니다. 

재일동포여러분에게 전해드리는 희망의 소식

강 : 9.26논설은 이제는 미국이 북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 더는 없고 한가닥 기대를 걸고 있는 대조선제재 수단도 아예 밑바닥이 났다고 썼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이번에도 독자적인 추가제재니 뭐니 하면서 북이 아닌 재일동포들을 계속 구박하려 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러했듯이 동포들은 이에 당당히 맞서 싸울 것입니다만 소장님은 그러한 재일동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시겠습니까?
 
한 :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이 민족의 가슴 속에 눌려있던 통일의지를 활화산처럼 뜨거운 열기를 분출시키고 있었던 지난 2000년 여름과 그후 몇해동안 저는 재일동포사회를 방문하여 통일문제에 관한 대중강연을 진행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때 그 강연회에 참석하신 재일동포여러분들의 모습을 저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때 저의 정세분석능력은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통일의 당위성밖에 말씀드리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후회스럽습니다, 그 강연에서 저는 통일열차가 막 떠나려고 하니 막차를 놓치지 마시고 통일열차에 모두 오르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통일열차는 15년 세월이 지난 오늘도 아직 두 줄기 강철궤도 위를 힘차게 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통일세력이 민족단합의 궤도 위에 큰 차단물을 가로놓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 북, 해외의 통일운동세력들이 힘을 합해 연석회의 준비사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으니, 그 차단물을 치워버리고 민족 공동의 통일노래를 부르게 될 날도 이제 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희망하는 게 아니라, 미래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기에 미래를 체감하는 것입니다.

재일동포 여러분, 우리 민족이 70년을 하루같이 갈망하고 염원해온 빛나는 통일조국이 우리에게로 성큼 다가오는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까?

강 : 바쁘신 속에서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하겠습니다.

 (2016.10.5 정리. 대담록의 제목과 중간제목은 한호석 소장이 달았음)

〔녹취록〕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원칙의 현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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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6년 7월 4일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원칙의 현재적 의미’라는 주제밑에 도쿄에서각계층 재일동포 유지들로 구성된 ‘7,4토론회실행위원회’ 주최로 열린 7.4공동성명발표 44주년기념토론회에서 진행된 공개토론 녹취록이다.
이 녹취록은 조국평화통일협회(평통협)의 블로그 〈통일한마음〉(
http://jpth1990.dreamlog.jp/)에도 실렸다.


출연

김지영(조선신보사 평양지국장)
최석룡(월간잡지 〈통일평론〉 편집장)
특별출연
정기열(중국 청화대학 초빙교수, 제4언론 편집인)

진행 강민화(조국평화통일협회 부회장, 대동연구소 소장)


조국통일3대원칙은 남북이 합의한 원칙


◆(질문 강민화)오늘 토론회의 주제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원칙의 현재적 의미”입니다만, 잡지 편집을 통해서 오랫동안 통일문제에 관여해 오신 최석룡 선생님은 이 조국통일3대원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최석룡 : 북에서는 이 3대원칙에 대해서 상당히 강조합니다. 그런데 남에서는 대통령이 ‘신뢰프로세스’요, ‘드레스덴선언’과 같은 것을 내놓고 어떤 때는 “통일은 대박”이라고 통일에 대해서 많이 언급합니다만 그가 조국통일3대원칙에 대해서 언급한 것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면 이 3대원칙이 북측의 주장인 것처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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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은 1972년에 북의 김일성 주석과 남의 박정희 대통령의 위임을 받아서 조선노동당의 김영주 조직지도부장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수표해서 발표된 남북공동성명에 반영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남북이 합의한 것입니다. 서로 대립하는 남북이 화해하고 좋게 지내자면 타협도 하고 양보도 해야 하는데, 그 기조가 되는 원칙을 내놓고 그것을 지키자고 당시에 약속한 것이 바로 이 3대원칙입니다.

우리 나라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주라는 것이 얼마자 중요한가고 느껴집니다. 특히 이조시기 이후는  어떤 때는 명나라 보고 절하고 또 어떤 때는 청나라 보고 절하고, 이렇게 지내왔습니다. 그러면서 내부에서는 자꾸 싸우기만 했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해 들어왔을 때에도 어떤 사람들은 청나라를, 또 어떤 사람들은 러시아를, 또 어떤 사람들은 일본을 처다봤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우리 나라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말았습니다만, 이 같은 일들을 돌이켜 보면서 느껴지게 되는 것은 과거에 민족의 자주를 중요시하지 못했거나 자주를 지키는 힘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해방된 이후도 그렇습니다. 해방된 조선의 북쪽에는 소련군이 들어가고 남쪽에는 미군이 들어갔는데, 몇해후에 소련군이 북에서 철수했습니다. 그러니 북은 자주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남에서는 그렇게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해방된 조국땅에 분열의 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남북의 제정당, 사회단체 인사들이 1948년에 평양에 모여서 연석회의를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단독선거를 반대하고 민족자주의 힘으로 통일독립을 이룩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감하게도 이승만이라는 사람이 미국 비행기를 타고 남반부에 날아와서 권력을 쥐었습니다.또한 당시 일정기간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를 실시한 다음 통일적인 정부를 수립할데 대한 모스크바3상회의 결정을 미국이 뒤집어버리고 조선문제를 유엔에 가져갔습니다. 이리하여 우리 나라가 분단되지 않았습니까.

조선전쟁 이후도 그렇습니다. 정전이 된 다음 제네바에서 회의가 열렸는데 북측은 조선반도에서 총선거를 실시하자면서 이를 위해서 남북이 힘을 합쳐 민족대회를 열자고 제안했습니다. 한편 남측과 미국은 유엔감시하의 선거를 하자고 했습니다. 결국 유엔의 권위 운운하던 미국에 의해서 회의는 파탄되고말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민족자주라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분단된 나라가 몇개 있습니다만 우리 나라, 독일, 베트남 외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유럽의 오스트리아도 그랬습니다. 전후에 이 나라를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가 점령했는데,잘못하다가는 이 나라도 분단될번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오스트리라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도 보수파도 단결해서 민족자주를 지켰습니다. 그래서 분단이 안되었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훗날 이 오스트리아 문제를 예를 들어서 영세중립화 문제에 대해서 언급한 일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조국통일3대원칙은 남북이 합의한 원칙입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 근현대사를 돌이켜 보면 민족자주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민족대단결 문제가 역시 중요합니다.  또한 현 시점에서 이 이상의 원칙이 없습니다.
 
만약에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볼 기회가 있다면 그에게 물어보고싶습니다. 자주, 평화, 민족단결 외에 좋은 원칙이 있으면 내놓으시라고. 북에서는 7차당대회에서도 그렇고 정부, 정당, 단체 연석회의에서도 남측의 좋은 제안이 있으면 내놓고 함께 토의하자고 했습니다.

8월연석회의 제안의 진지성, 진정성

◆최석룡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에 북에서는 남과 해외에 공개편지를 보내고 8.15를 전후하여 평양이나 개성에서 ‘조선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북, 남, 해외 제정당, 단체, 개별인사들의 연석회의’를 갖자고 제안했습니다. 김지영 선생님은 기조발언에서 이 8월연석회의 호소는 최고영도자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김지영 : 해마다 8.15에 즈음해서 통일행사들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90년대에는 범민족대회가 열리고 2000년의 6.15이후는 평양과 서울, 금강산 등지에서 통일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이번 제안은  그런 행사들과 차원을 좀 달리 합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번 제안을 보고 김정은위원장의 주도하에 자주통일국면이 이미 시작되였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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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에서는 이미 북측준비위원회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남측과 해외에 공개편지를 보냈습니다. 준비위워회의 위원장, 부위원장, 위원들은 김정은위원장의 위임에 따라서 임명되였습니다. 말하자면 이 준비위원회는 최고령도자의 의향이 직접 반영된 것입니다. 이것은 8월련석회의의 진지성, 진정성을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된 것처럼 68년전인 1948년 4월에 평양에서 남북련석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때 남측에서는 김구선생을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이 평양을 방문하고 북의 공산주의자들과 허심탄회하게 론의를 했습니다. 4월련석회의에서는 분단의 위기를 막기 위한 방책이 무엇이냐가 론의의 초점이였습니다. 그러면 이번 8월련석회의는 무엇때문에 하자는것인가? 이미 분단의 력사가 있는데 이에 종지부를 찍고 통일의 프로세스를 시작하자고 하는 민족회합입니다. 이 제안의 배경입니다만, 조선이 분단된 원흉인 미국과의 최후결판을 내다보고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올해  8월에 실현되지 않았다고 해서 이 제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북에서는 실현될 때까지 계속 호소해나갈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과 차원을 달리 하는 북측의 결심

◆이 자리에는 북에서 보낸 공개편지를 수신하신 분이 계십니다. 중국 청화대학 초빙교수이시며 〈제4언론〉 편집인이신 정기열 선생님이십니다. 특별출연으로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정기열 : 이번 북녘의 8월연석회의 제안은 조국의 통일과 관련한 이전의 제안들과 차원을 달리한다는 김지영 지국장의 주장에 저도 깊이 동의합니다. 저도 7차당대회기간 평양에 머물고 있으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사업총화보고를 들었을 때 자주통일의 프로세스가 과거와는 다른 힘으로, 과거와는 다른 전망을 갖고 대단히 구체적으로 전개되겠구나 하는 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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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초청장을 받은 제가 알고 있는 경우에만도 남, 북, 해외에서, 특히 재일동포들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 평생을 통일운동에 헌신하신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아직 북측준비위원회로부터 초청장을 받지 못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북측준비위원회에 그런 모든 분들의 마음을 담아서 이미 어떤 조직에 망라되어 있고 조직의 대표성을 가지고계시는 분들만이 아니라 여러 이유로 조직과 운동의 대표성을 가지고 계시지 않은 분들 가운데도 평생을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하여 헌신하시는 분들을 추천하고싶다고 하는 제안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오늘 아침에 당장 북측준비위원회로부터 동의한다고 하는 답이 왔습니다.
 
제가 이런 일을 소개해 드리는 이유는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의 위대한 순간을 기필코 앞당겨오고야 말겠다고 하는 북녘동포들의 결심은 이전과 차원이 다르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8월연석회의가 두가지 측면에서 즉 민족내부 측면과 조미대결사로 대표되는 지구촌정세의 두 측면을 염두에 두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고 생각합니다.
 
저의 판단으로는 올해 8월연석회의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라도, 그것이 장소가 어디이건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보는 배경중의 하나가 남녘동포들속에서 더 이상 박근혜 정권에 따르지 않겠다고, 이제는 스스로의 판단과 조직적 결정에 의해서 남, 북, 해외 동포들이 모이는 전 민족이 함께 하는 자리에, 80-90년대처럼 돌아와서 감옥에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참가하려는 움직임이 있지 않겠냐고 하는 생각입니다.


언론에서 보셨던 것처럼 전농이 참가를 공식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민주노총도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미 남녘동포들의 조직적 움직임이 보이고, 현직 국회의원들도 개별적으로 이번 연석회의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움직임이 보인다고 합니다. 저는 어떠한 형태를 띠든 8월연석회의가, 1948년 4월이후 제2의 엑사적인 연석회의가 열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민족외적 측면에서는 우리 민족을 70년동안 분열시킨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전략이 더 이상 기능할 수 없도록 조선수소탄시대에 구도자체가 바뀐 조미대결이라는 배경이 있습니다. 북에서 제안한 연석회의에는 그저 구호나 주장 차원에서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 하는 차원이 아닌, 힘으로 미국을 강제해서 그들이 우리 민족의 대회합을 가로막을 수 없도록 하는 그런 민족외적 요인도 과거와 다른 차원에서 무르익었다고 생각합니다.

바깥 요인중 하나의 예를 올리면, 영국이 유런연합(EU)으로부터 탈퇴하겠다고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한다는 사건이 아니라, 500년 서구제국주의 연합이 근본에서 붕괴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2차세계대전 직후에 결성된 영미제국으로 불리우는 지배체제의 근본이 무너지는 것이 온 세상에 폭로된 사건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사건과 같은날 베이징에서는 푸틴 대통령의 공식방문이 있었습니다. 그때 정상회담에 대한 기록이발표되었는데, 중요한 것은 소위 말하는 북핵문제에 관해서 이전에 중국, 러시아의 국가지도자들이 했던 말이 반복되지 않고, 핵심은 우리 식으로 말하는 반제자주 전선을 확대하고 반미투쟁을 어떻게 전 지구적 차원에서 벌이게 하겠는가 하는 차원에서 두 나라가 마치 한 국가로 힘이 모아지는 형태로 역사적인 부틴·시진핑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이런 민족외적 동북아 혹은 지구촌 정세를 하나의 참고배경으로 놓고 볼 때 제7차당대회 이후 북녘동포들이 남, 북, 해외 전체 우리 민족에게 제안한 이번 8월연석회의는 과거와 다른 차원에서, 그저 희망과 바램이 아니라 어떤 실질적인 힘에 의해서 추진될 것이라고 나름대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아까 한호석 박사께서도 강조한 것인데, 평화협정 체결과 함께 진행될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 문제에서 이전과는 달리 미군철수가 전제된 평화협정 체결과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 움직임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이 제재나 압력에 흔기를 들고 굴복하는 일은 없다

◆감사합니다. 정기열 선생님이 지금 민족외적인 문제에 관해서 뜻있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만 지금의 정세를 보면 표면에 보이는 것은 북이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악마화되고 고립된 것과 같은 모양새입니다. 그러나 가장 강경한 제재라고 하는 유엔안보리 제재 2270호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북에서는 ‘화성-10’호라는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고 스스로 밝혔습니다. 뿐만아니라 최근에도 외무성 대변인이 제재가 강화될수록 자기들 핵 억제력이 질양적으로 더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제재의 효과가 없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과연 지금의 대북제재 국면이 지속가능한지 김지영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김 : 지금의 제재국면이 언제까지 지속되겠는가 하는 문제를 논리적으로 풀자면 두가지 요인에 대해서 검토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는 조선이 제재를 견디여낼수 있는가 하는것입니다. 조선이 견디지 못하고 흰기를 들게 되면 그 시점에서 제재는 끝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습니다. 지난 3월 유엔안보리에서 사상최강의 결의안이 채택되고 발동되었습니다. 지금 백악관도 청와대도 머지 않아 제재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보고있는 모양입니다만 그들은 조선의 실정, 조선인민의 잠재력을 너무나도 모르고있습니다. 중국이 유엔안보리제재에 얼마나 성실히 림하겠는가가 관건이라고 말하는 분석가들도 많습니다만 중국이 끝까지 보조를 맞추었다고 해도 조선은 병진로선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지금 조선에서 조국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은 1990년대의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돌파한 사람들입니다. 그때 조선에 동정하고 도와주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 사람들이 몹시 단련되였습니다. 국가도 지방행정도 공장, 기업소도 가정도 개인도 자체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내부예비를 찾고 자기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방법론을 배워서 그것이 이제는 완전히 체질화되였습니다.

지난 20년동안에 조선의 경제구조는 더욱더 주체화되였습니다. 조선이 자립경제를 해왔습니다만 80년대까지 사회주의경제시장이 있다는것을 전제로 했던 경제시스템은 90년대에 끝났습니다. 미국에 의한 국제포위망속에서도 제발로 걸어갈수 있는 경제, 자기 나라 경제와 기술로 돌아가는 경제로 개조되고 혁신되였습니다. 이것이 다 적대세력의 고립, 압살책동 덕분입니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주체경제의 나라입니다. 오늘 조선에는 자력자강의 경제시스템이 있습니다.

지난 고난의 행군시기에 비하면 생활이 많이 풀렸습니다. 지금은 사회주의문명국을 건설한다고 합니다만 문명한 생활을 누릴수 있을만한 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로 되돌아가자고 하면 모두 싫어합니다. 그렇지만 그 가혹한 시련속에서 마련했던 전쟁억제력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그렇게 되면 기꺼이 제2의 고난의 행군을 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렇게 되여도 이제는자력자강의 경제시스템이 있기때문에 90년대처럼 비참한 생활은 없을것이다, 이러한 락관론에 넘쳐있는것이 지금의 조선입니다. 이것이 최고령도자의 의지이며 인민들의 생활감정에서 나오는 여론입니다.

또 하나의 요인은 미국입니다. 미국은 제재의 목적을 북의 핵포기에 두고있습니다. 이 목적이 달성되지 않는다면 제재같은것은 그만둡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과없는 제재를 계속하고있는데, 그것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는가 하는것입니다.

제재국면이 대화국면에로 바뀔 동기는 따로 있습니다.조선에 대한 제재로 미국이 화를 입게 될 경우그들은 제재를 그만둡니다. 지금 바로 그러한 상황이 조성되여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기조발언에서도 말했습니다만 조선에서 전쟁억제력의 가시화가 이미 시작했습니다.

3월에 김정은위원장이 핵공격능력의 믿음성을 보다 높이기 위하여 빠른 시일안에 핵탄두폭발시험과 핵탄두장착이 가능한 여러 종류의 탄도로케트시험발사를 단행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해당부문에 그렇게 준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지시가 집행되여서 ‘화성-10’호미싸일이 발사되였습니다. 제재국면이 지속되는한 이 지시는 취소 안됩니다. 그렇기때문에 앞으로 핵탄두로케트시험, 여러 종류의 탄두시험이 있을수 있는데 그러면 미국은 더더욱 궁지에 몰리우게 됩니다. 앞으로 시험발사가 11월에 있게 될 미국의 대통령선거 이전에 있겠는지, 아니면 그 이후에 있겠는지, 아니면 차기정부 때에 가서 그들이 대북정책을 책정하고 있을 때에 있겠는지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겠다고 한것만큼 언제든지 있을수 있습니다. 이 핵시험에 관한 지시는 최강의 승부수입니다. 이미 당대회를 앞둔 시점에서 던저졌습니다. 미국의 정치일정까지 다 내다보고 통장훈을 부른것이지요. 어차피 빠르든 늦든 미국이 조선의 핵억제력강화프로세스에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 그래서 유엔안보리제재가 당장 해제 안됩니다. 그러나 그런 압박만으로써는 못견딜것입니다.

6.15-10.4선언들은 골동품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다

◆우리가 통일을 지향하는데서 조국통일3대원칙과 함께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등장한 이후, 그들에 의해서 선언들이 부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박근혜 정부에 의해서 선언들이 짓밟혔습니다. 그래서 이대로 가다가 두 선언이 서랍안의 골동품이 되어버리지 않겠는가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최석룡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 : 얼마전에 재미 〈민족통신〉 사이트를 보니까 한국의 어떤 인터넷언론에 실린 조중 압녹강 국경도시 단둥(丹東)에 한달간 머무르고 취해한 기자의 글이 실렸습니다. 요즘 대북제재 때문에 조중무역도 주춤해져서 양국을 잇는 다리를 트럭이 오가지 않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자가 이곳에서 24시간동안 다리를 살펴보니까, 오전에 조선에서 많은 트럭이 단둥에 들어가고 오후에는 중국쪽에서 조선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기자는 아. 이건 다리가 좁아서 서로의 트럭들이 다니는 시간을 조절하는구나, 서울에서는 트럭들이 오가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구나, 이렇게 썼습니다.

그리고 이 기자가 단둥에 있는 조선식당에도 가보고 취재했습니다. 서울에서는 이 식당들이 대북제재때문에 종업원들이 도망쳤다거나, 문을 닫게 되었다는데 실지 가보니 손님들로 곽 차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식당들에 이전에는 한국 손님들이 많이 왔는데 요즘은 중국 손님들이 많이 온다고 들었답니다.
 
그러니까 실상은 일본이나 서울에서 전해지는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김일성 주석이 세상을 떠나셨을 때 소위 평론가라는 사람들이 이제 북은 3년, 길어도 5년후에 무너진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돌아가셨을 때도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이 등장했을 때도 2-3년밖에 못갈 것이라고 했지만 이미 5년이 지나갔습니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과 관련해서는 최근에 한국에서도 국회의원들이‘6.15의 날’을 기념하자고 하는 움직임이 있지 않습니까.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 지금 이행되지 않고 짓밟힌 상태이기 때문에 물론 분위기야 ‘6.15시대’때와 같지는 않지만 그것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다 사라지거나 골동품이 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개성공단 하나만 보아도 비록 지금 폐쇄되었지만 ‘6.15시대’에 이곳에서 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북도 벌고 남도 벌고 하니 얼마나 좋은가, 앞으로 이것이 통일에 기여가 된다면 더 좋다고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꾸 거기서 번 돈이 모두 로켓발사나 핵개발에 씌였다고 하는데 여기서 번 돈을 가지고는 도저히 모자랍니다. 제트전투기가 연료 1리터로 얼마나 날아갈 것 같습니까? 보통 자동차이면 30키로정도 달립니다만, 불과 100미터입니다. 금강산관광에서 번 돈을 가지고도 도저히 모자랍니다.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6.15공동선언도 그렇고 10.4선언도 그렇고, 남과 북이 서로 화해하고 통일을 지향해 나가자, 경제교류도 하자, 문화교류도 하자고 되면 그 이상의 방도는 없습니다. 문제는 북에서는 당대회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서 김정은 체제가 갖추어지고 나아갈 길도 정해졌는데, 남의 박근혜 대통령은 안됐지만 명년에는 임기가 끝나서 물러가야 합니다. 미국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 발표당시에는 남의 대기업들에서 경제효과가 막대하다고 말한 것처럼 북에게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있어서도 이익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학자,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꾸 복잡한 이야기만 하는데 나는 사람이 단순하기때문에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지금도 남녘동포들속에 남아있을뿐 아니라 실지로 효과를 계속 내고 있기도 하고  있는만큼 앞으로도 이것밖에 없고, 하물며 선언들을 골동품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재일동포사회의 미래상을 통일조국과 연계해서 대담하게 그려야 한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 재일동포사회도 세대교체가 진행되면서 본의아니게 장기화되고 있는 통일운동을 어떻게 벌여나가겠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게 제기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기자로서 동포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은 김지영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 : 조국통일운동은 일본에서도 사상과 주의주장 같은것을 다 초월해서 하나가 될 수 있는 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월이 흐루고 세대가 바뀔수록 통일의식이 희박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저는 오히려 세대교체가 촉진되고있는속에서 우리 동포들이 민족의 넋을 지니고 민족적뉴대의 따뜻함을 간직해나가기 위해서는 통일에 대한 관심, 크고 작은 노력들을 자기 생활의 일부로 하는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6.15시대에 제가 일본보다 평양에 더 오래 머물었습니다. 북남행사장들에도 나가보았습니다. 그런 마당에서 평양태생과 서울생이 서로 만나면 다 어울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 우리같은 재일동포들이 특별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례컨대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상봉을 취재하는데 총련기자는 북측과 함께 행동하기때문에 사전에 북측의 가족들을 먼저 취재합니다. 그래서 평양이나 서울, 금강산 행사장들에서 눈물의 상봉마당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눈물의 상봉을 하고 마음이 좀 안착되면 총련기자들을 찾습니다.왜냐하면 남측의 가족들이 북측의 가족들에 대해서 궁금해하는것들, 혹은 북측의 가족들이 남측의 가족들에 대해서 알고싶어하는것이 있는데, 그런 때에 총련기자들이 가운데서 설명해줄것을 그들이 요청합니다. 북측가족들의 립장에서 총련기자는 ‘자본주의를 아는 우리측사람들’입니다. 또 남측가족들은 로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 기자라고 하면 말도 걸기 힘들어하지만 총련기자는 자본주의에 살면서도 북에 대해서 설명할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역할은 그저 기자역할이 아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6.15시대에 우리 학교 학생들이 서울에 가서 공연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남녘동포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동했습니다. 민족의 얼을 지켜나가는 재일동포 3세, 4세, 5세들의 모습에 감동한것입니다. 동시에 그러한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서 가까이에 있는 자식보다 멀리 떨어저 사는 해외동포자녀들에 대해서 관심을 돌리고 혜택을 베풀어주는 북의 령도자의 업적을 알게 됩니다.

남에 보수정권이 등장해서 8년입니다만 이제는 북과 남의 교류가 완전히 차단되여있습니다. 그동안 남녘에서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정부를 떠받드는 언론매체들이 반북선전을 대대적으로 해왔고 지금도 하고있습니다.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나쁜 감정이나 인식들이 확대재생산되여온 8년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2의 6.15시대는 반드시 열립니다. 그때 재일동포들은 제1기 6.15시대 때보다 더 큰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제2의 6.15시대는 제1기 6.15시대의 원상회복이 아닙니다. 련방련합에 의한 통일을 상정하는 단계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활동령역이 평양이나 서울, 금강산 등의 행사장만이 아니게 됩니다. 그것이 박근혜정권시기에 실현 안될수도 있지만 어쨌든 정치, 경제, 문화, 체육 등 모든 령역에서 교류협력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동포들의 특별한 역할이 요구되게 됩니다.그렇게 되였을 때 재일동포의 존재감을 과시할수 있는 4세, 5세가 있겠는가?  그것은 결국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국통일에 어떤 자세로 림하겠는가, 일본에서 통일운동을 어떻게 벌려나가겠는가, 그리고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통일조국의 표상을 어떻게 안겨주겠는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것입니다. 아직 제2의 6.15시대 막이 오르지 않았지만 때가 오기를 기다리지말고 지금부터 동포사회의 미래상을 통일조국과 련계해서 대담하게 그려야 합니다. 그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겠는가, 할수 있는 일부터 착수해나가야 한다, 그런 자세와 노력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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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전의 7월 4일, 이날도 도쿄에서 통일토론회가 열리고 내가 처음으로 진행역을 맡아보았습니다. 그날 700명을 수용가능한 방이 꽉 틀엊차고 장내가 떠나갈듯한 박수소리가 자주 터져나왔습니다. 왜 그랬는가 하면 그때가 6.15공동선언발표 직후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정세는 그때와 정반대되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그런 속에서 오늘 토론회가 열렸습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번처럼 힘들어본 일이 없었습니다. 듣자니 남측의 당국은 우리가 오늘 토론회를 갖는다는 것을 벌써 알고 일본에 가면 여기에 참가해서도 안되고 발언을 하는 것은 더욱이 안된다고 압력을 넣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 토론회가 보시는 것처럼 매우 진지하고 열띤 분위기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래서 동포들의 통일열기는 결코 식지 않았다는것을 여러분들과 함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연자 선생님들, 협찬자이신 기타가와 히로가즈 선생님, 가토 마사키 선생님께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토론을 진지하게 경청해주신 동포 여러분께 마음속으로부터 감사를 드립니다.

7.4공동성명의 골짜인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에 대해서 남에서도 북에서도 조국통일의 3대원칙이라고 말합니다.

원칙이란 무엇일까요? 남측 사전에서는 “어떤 행동이나 이론 따위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이라고 풀이되어 있으며, 북측 사전에서는 “일정한 행동, 리론, 사업 같은데서 일관하게 지켜야 할 기준으로 되는 기본적이며 본질적인것”이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약간의 내용상 차이는 있지만 “일관하게 지켜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는데서는 공통되여 있습니다.그러니까 세월이 흐르고 환경이 변해도 원칙만은 변해서는 안되고 일관하게 지켜져야 하는 것이지요.

일제시기 상해임시정부에서 백범 김구의 비서로 활동했던 장준하는 7.4공동성명이 발표되었을 때 “7.4남북성명은 우리 민족의 거울이다. 이 놈을 우리 민족의 현실 앞에 걸어 놓고 있으면 조만간에 진짜와 가짜가 갈라질 것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조국통일3대원칙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의 말대로 공동성명은 오늘까지 진짜, 다시 말해서 통일할 마음이 있는사람들과 가짜, 다시 말해서 통일할 마음이 없는 사람들을 가르는 거울이 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조국통일3대원칙은 민족통일운동의 근본초석이라고 불리우게 되었으며, 20세기를 마무리짓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이 원칙에 기초해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 세상에 탄생했습니다.

사실 6.15공동선언의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간다는 1항에는 자주의 원칙과 민족대단결의 원칙이 구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북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과 남의 연합제안 사이에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그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간다고 하는 2항에는 평화통일의 원칙이 구현되지 않았습니까.

하여 조국통일3대원칙은 6.15공동선언, 10.4선언과 함께 민족공동의 통일대강으로확고히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떠나서 우리의 통일운동은 생각할 수 없고 오늘 통일을 둘러싼 엄혹한 정세를 타개할 길도 다른데서찾을 수 없습니다. 토론회에서도 이 점이 확인되었다고 봅니다.

오늘 토론회가 통일의 주인들인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지금의 위기상황을 타개하고 통일을 지향해 나가는데 다소나마 기여가 되었다면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녹취 및 정리는 강민화. 사진은 ‘7.4토론회실행위원회’제공

인터뷰 “우리 민족의 통일 이념으로 ‘우리 민족끼리’ 상정 가능”

〈통일뉴스〉(서울)와의 인터뷰(2009.4.21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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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민족론은 지금도 계속 심화 발전되는 과정에 있어”
□ (질문 : 통일뉴스 이계환 대표)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적 차원으로 퍼지면서 신자유주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신자유주의 이후 대안으로 민족주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을까 하는 성급한 진단도 있습니다. 특히, 남북의 경우 통일문제와 관련해서는 민족주의가 주요한 역할을 해 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견해가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 왔습니다. 오늘은 주로 북한은 민족 문제와 민족주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리고 뒤에서는 재외동포들의 민족문제와 민족주의 문제의 순서로 묻고자 합니다.

그러면, 먼저 북의 민족론에 대해 묻고자 합니다. 민족론은 크게 ‘민족의 개념’과 ‘민족의 형성 과정’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북에서는 민족의 개념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또한 민족의 형성과정에서 볼 때 유럽에서는 민족이 자본주의와 함께 생겨났다면서 근대주의적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민족의 형성 과정에 대한 북측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 강민화 :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세계적 판도에서 보면 민족에 대한 정의가 참으로 각이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세계에 존재하는 민족들이 모두 그 형성 경위나 존재 환경을 달리 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민족, 민족문제에 대해서 연구하는데 대해서 나침판이 없이 정글속에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결국 민족의 개념이나 형성 과정에 대한 정의는 그 자체가 철저한 주체적 시각과 자세를 요구한다는 것인데, 북의 민족론은 자기들의 지도 이념인 주체사상에 기초해서, 그야말로 철저한 주체적 시각에 따라 정립된 것입니다.

먼저 민족의 개념 문제입니다만, 북에서는 민족이란 역사적으로 형성되고 발전해온 사람들의 공고한 집단이며 생활단위, 또는 사회역사적으로 형성된 사람들의 공고한 결합체이며 운명의 공동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족의 형성 과정은 개개의 씨족, 종족 집단들이 단일한 전체에로 통합하는 과정이며, 지역과 종족 집단의 통일성이 완전히 실현될 때 민족의 통합결속이 완성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정치적 중앙집권화에 의해서 통일적인 정치생활이 이루어짐으로써 민족의 형성과정이 완성된다고 주장합니다.

이같은 시각에 따라 북에서는 우리 민족이 여러 개의 씨족, 종족들이 고조선시대로부터 정치적 공동체를 거치면서 독자적인 문화와 언어,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되는 과정에 형성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북에서는 또한 민족 형성의 경위는 민족마다 다르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민족들은 자본주의 발생과 더불어 형성되었으며 또 어떤 민족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형성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근대주의적 주장을 전적으로 부인하지 않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문제는 이를 우리 민족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북에서는 근대주의적 입장에 대해서, 이는 유럽나라들의 실태에 기초해서 전개된 것이며, 예로부터 한 강토에서 한 핏줄을 타고 같은 말을 하면서 살아 왔고 반만년의 역사와 문화를 가진 우리 민족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북에서 민족론이 정식화된 것은 언제 어떻게 이뤄졌습니까? 그리고 민족론 정식화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민족은 역사적으로 형성되고 발전해 온 사람들의 공고한 집단이며 사회생활단위라는 규정은 1991년 8월 1일에 진행된 김일성 주석의 담화 『우리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민족은 사회역사적으로 형성된 사람들의 공고한 결합체이며 운명공동체라는 규정은 같은 해 5월 5일에 진행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 『인민대중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는 필승불패이다』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해에 나온 이 두 담화를 통해서 북의 민족론이 정식화되었다고 말하기는 좀 힘듭니다. 왜냐 하면 북의 민족론에는 민족의 개념뿐 아니라 민족의 징표에 관한 문제, 민족의 형성, 발전 문제, 민족과 계급의 호상관계 문제 등 많은 내용들이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기에는 민족의 생명에 관한 문제와 ‘우리 민족제일주의’와 같이 기존의 민족론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내용도 포함됩니다.

그 가운데 가령 민족의 징표와 관련해서는 벌써 1960년 10월 4일에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진행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 『민족문제에 대한 옳바른 리해를 가질데 대하여』에서 민족을 이루는 기본 징표는 핏줄과 언어, 지역의 공통성이지만 이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징표는 핏줄과 언어라고 정의가 내려졌습니다.

또한 자주성이 민족의 생명이라는 정의는 김일성 주석의 담화 『우리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자』와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결성 40돌에 즈음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한 『재일조선인운동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킬데 대하여』(1995.5.24)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2008년 9월 5일부로 〈로동신문〉과 〈민주조선〉지에 보내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불패의 위력을 지닌 주체의 사회주의국가이다』에서 민족의 우수성을 살릴 데 대한 문제와 관련해서 시대와 혁명이 전진하는데 따라 민족의 새로운 우수성을 창조해서 ‘조선민족제일주의 정신’으로 사람들을 교양할 데 대한 문제가 1997년 6월 19일부로 발표된 국방위원장의 논문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할 데 대하여』에 이어 다시 강조되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북의 민족론은 어느 한 시점에서 정식화되었다기보다 오랜 세월을 통해서 이론화, 체제화되어 왔으며, 지금도 계속 심화 발전되는 과정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지 않겠는가 봅니다. 어쨌든 세계적인 민족론의 난립상황 속에서 철저한 주체적 시각에 따라 민족론이 제시되었으니 북에서는 그 의미가 자못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방금 중요한 지적을 하셨습니다. 북의 민족론은 한 시점에서 정해진 게 아니라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변화 발전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통 이론은 시원-변화.발전-정식화 과정을 겪습니다. 북 민족론의 시원을 어디부터 봐야 할까요?

김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보면 그때 이미 제가 방금 말씀 드린 그런 민족론이 나옵니다. 그러니 북의 민족론도 주체사상과 시원을 같이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960년 담화’
또 하나 중요한 지적을 하셨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학생들과 한 ‘1960년 담화’에 나온 민족론 개념입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이 담화가 그동안 북의 민족론을 다룰 때 거의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이 담화가 소홀히 다뤄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글쎄요, 이 담화 내용이 소홀히 다뤄져 왔다기보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요? 당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언어, 지역, 경제생활, 문화의 공통성에 대표되는 심리상태 등의 공통성, 이들 징표 가운데서 하나라도 결여되면 같은 민족으로 볼 수 없다고 한 스탈린의 주장과 관련해서, 그렇다면 해외동포는 같은 민족으로 볼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사실 스탈린의 주장대로라면 해외교포들은 거주지역도 경제생활도 모국의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에 같은 민족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에 떨어지게 됩니다.

바로 이 논쟁 마당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결국 민족을 이루는 기본 징표는 핏줄과 언어, 지역의 공통성이지만 이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징표는 핏줄과 언어이며, 비록 해외동포들이 남의 나라에 살고 경제생활이 조국 동포들과 다르다고 해도 핏줄과 언어가 같으면 같은 민족으로 보아야 한다는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북에서는 여러 자료들을 통해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벌어진 이 논쟁과 관련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왔습니다.

아울러 ‘1960년 담화’의 존재가 알려지기 이전에도 1964년 1월 3일에 진행된 김일성 주석의 담화 『조선어를 발전시키기 위한 몇 가지 문제』에서 민족의 징표로서 핏줄과 언어의 공통성 문제가 강조되었습니다.

문제는 ‘1960년 담화’가 그동안 어째서 알려지지 않았는가 하는 것입니다만, 그것은 이 담화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당시 자신은 김일성 주석의 전사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도에 따라 어디까지나 주석의 사상과 업적만을 내세웠던 사정과도 관련이 있지 않겠는가 봅니다.

사실 이 담화 외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와 논문들이 수많이 발표되었습니다만, 그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문건이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발표된 것은 1982년 3월 31일자로 된 논문 『주체사상에 대하여』였습니다. 이는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서 공식 마당에 등장하게 된 1980년 10월의 조선노동당 제6차대회 이후입니다. 아무튼 그 이전에도 많은 논문과 담화가 있었는데 공개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럴수록 ‘1960년 담화’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960년 담화’가 출처 없이 1985년에 발간된, 총 10권으로 구성된 『위대한 주체사상 총서 2』에 나옵니다. 즉, 총서에는 ‘1960년 담화’와 같은 내용이 나오는데 그 주체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인데 그게 언제 어디에서나 나왔나 하는 출처가 없습니다.

그런데 2008년에 한 재일동포 학자에 의해 이 ‘1960년 담화’의 출처가 뒤늦게 밝혀집니다. 월간 잡지 『민족 21』주최로 진행된 재일 조선대학교 한동성 교수와 남측의 현대사연구소 정영철 소장과의 인터뷰에서 한 교수가 ‘1960년 담화’를 소개하면서 그 출처를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1960년에 나온 민족의 개념이 지금 정식화된 그것과 별 차이가 없다고 볼 때, 바로 1960년대에 민족론을 정식화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그때 왜 정식화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도 남습니다.

■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그 당시 고전에 대해서 교조적으로 대했던 사정이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북에서는 1960년대에 모든 일에서 주체를 세울 데 대한 문제가 매우 중시되고 강조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마르크스―레닌주의 고전에 대해서 교조적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 실정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문제가 강조되기도 했지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의해서 종합대학에서 ‘고전병’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기울어졌다는 에피소드도 그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이같은 작업에 이어서 1960년대 후반에 국방위원장에 의해서 노동계급의 100년사상사에 대한 전면적인 연구와 재검토 작업이 진행되고 그에 기초해서 훗날 김일성 주석의 혁명사상이 주체의 사상, 이론, 방법의 전일적 체계로 정식화되었습니다. 그 과정에 스탈린의 민족론에 대해서도 당연히 연구와 재검토가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피’와 ‘핏줄’은 달라”
북은 건국 초기에 스탈린의 민족개념을 차용했습니다. 그런데 방금 말씀하신 대로 북의 민족론의 변화 과정을 보면 1960년대에 스탈린의 민족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고전병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러자 1970년대 들어 민족개념에서 스탈린의 ‘경제생활의 공통성’이 삭제되는 것에 반비례해서 ‘핏줄’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핏줄이 첨가되는 이유와 계기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북의 민족의 징표에 보면 ‘핏줄=혈연’이 매우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여기서 ‘피’가 아니라 ‘핏줄’ 그리고 ‘혈(血)’이 아니라 ‘혈연(血緣)’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북에서 민족의 징표로서 핏줄 문제를 중시하게 된 이유는 역시 기존의 민족론에 교조적으로 매달릴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반만년 역사를 갖는 단일민족이라는데 발붙인데 있었다고 봅니다. 흔히 우리 민족이 단일민족이라고 합니다만, 이 단일성이 무엇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유지되어 왔는가 하면 역시 주되게는 핏줄과 언어이지요.

이 핏줄과 관련해서 북에서는 어째서 ‘피’ 혹은 ‘혈’이 아니라 ‘핏줄’ 혹은 ‘혈연’이라고 표현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피’ 또는 ‘혈’이라고 하면 생물학적 의미가 됩니다. 따라서 생물학적 의미로서의 인간의 ‘피’와 인간의 사회적 집단, 그러니까 사회적 개념으로서의 민족의 ‘혈연’ 또는 ‘핏줄’을 구분해서가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피’와 ‘핏줄’은 다르다는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북이 민족개념에서 핏줄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남측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그 전근대성과 함께 종족주의, 보수주의, 순혈주의라면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북측의 입장은?

민족이란 그 자체가 사회역사적 개념입니다. 따라서 언어와 핏줄, 문화의 공통성과 같은 민족의 징표 역시 사회역사적 개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에서 민족의 징표로서 말하는 핏줄의 공통성도 역시 생물학적 개념이 아니라 사회역사적 개념으로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생물학적인 의미에서의 피의 공통성은 순수 혈연적 관계의 범위 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집니다만 민족의 징표로서의 핏줄의 공통성은 인간이 일정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는 과정에 사회역사적으로 형성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핏줄의 공통성 문제는 인종론이나 과거 나치스 독일에서 제창된 순혈주의와는 엄연히 구별됩니다.

물론 민족 구성원들 속에 다른 인종이나 피가 섞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이는 부분적 또는 일시적 현상이며, 핏줄의 공통성을 이루어낸 사회역사적 요인이 변하지 않은 한 인류는 특정한 유전자를 갖는 민족들로 이루어질 것이고, 민족들은 자기 개성을 유지하면서 공존해 나갈 것입니다.

핏줄이 생물학적인 개념이 아니라 사회역사적인 개념이라고 하는 데 그 이유를 상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스위스의 교포학자 최기한 선생은 자기 저서 『민족통일의 정치학』에서 “인간은 자기 선조가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이룩한 물질문명과 정신문명, 사회문화의 영향 하에 사회역사적으로 형성한 민족의 고유한 심리적 기질, 감수 기능에 기초하여 민족사회 특유의 경향적인 사고와 행동방식, 정서적 체험방식 등을 체질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민족의 혈연적 공통성인 것이다”, 이렇게 지적하셨습니다.

내가 핏줄의 공통성에 대해서 사회역사적 개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이는 결국 역사적으로 형성된 민족 구성원들의 사회적 관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우리는 조상을 같이 하는 한겨레라고 합니다만, 바로 그같은 사회적 관계를 두고 핏줄의 공통성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나 봅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래도 일반인들에게는 핏줄이 생물학적인 개념이 아니라 사회역사적인 개념이라는 것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핏줄 하면 생물학적 개념으로 받아들이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북에는 종종 이처럼 쉽지 않은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에게는 두 개의 생명이 있다, 하나는 육체적 생명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정치적 생명이다 하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지, 사회정치적 생명이란 게 뭐냐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업적을 남기지 않습니까. 이렇게 사람이 살고 활동하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얻게 되는 신임이나 그것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되는 것 등은 분명 사회적 관계의 소산이지요. 그런 점에서 사람의 생명은 단순히 육체적 생명에 그치지 않고 사회정치적 생명을 갖는다고 봅니다.

“북의 민족론과 통일론은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어”
북의 민족론의 변화 과정을 보면 ‘김일성 담화’와 '김정일 담화’ 등 북 지도부의 ‘담화’, 〈조선통사〉 등 역사서, 그리고 〈정치사전〉, 〈철학사전〉 등 사전류에 민족론이 각각 여러 형태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들 담화, 역사서, 사전류에 실린 민족론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무게가 있습니까? 아울러 담화, 역사서, 사전류 등의 특징과 차별성은 무엇입니까?

가장 무게 있는 것은 당연히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 논문, 연설들입니다. 북에서는 이것들을 통털어서 ‘노작’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북의 체제가 그러니까 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만, 문제를 그렇게만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상이나 이론도 그를 창시한 인물이나 그를 심화 발전시킨 인물의 견해가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해 노작을 중심으로 봐야지 해설서나 연구서를 우선시 하면 안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북에서는 수령, 영도자를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집단의 중심, 인민의 대표자로 봅니다. 때문에 그 노작들은 당대의 학계, 이론계, 나아가서 인민들의 연구 성과들이 수령, 영도자에 의해서 집대성된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노작들만 가지고 다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를 이론적으로 구체화하거나 종합, 분석하는 작업 또는 해설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역사서나 사전류는 그에 속할 것입니다.

한편, 이런 측면도 있습니다. 가령 어떤 문제를 놓고 학자, 전문가들 속에서 논쟁이 벌어질 때가 있는데, 이런 때에 문제가 제기되어 올라가면 지도부에서 적절한 해명을 주거나 방향을 제시하게 됩니다. 이 부류에 속하는 노작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같은 노작과 역사서, 사전류의 관계는 민족론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북의 민족론의 변화 과정을 보면 남북관계의 변화와 그에 따른 북측 통일론의 변화 과정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어 보입니다. 북 민족론과 통일론과의 상관관계를 설명해주십시오.

북의 민족론과 통일론은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습니다. 북의 민족론이 지향하는 것은 민족의 자주성 실현인데, 조국통일은 현 시기 그를 위해서 나서는 가장 절박한 과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김일성 주석에 의해서 제시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3대원칙과 전 민족대단결 10대강령,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의해서 ‘조국통일 3대헌장’으로 정식화되었습니다. 이 3자는 통일의 근본 원칙, 통일의 주체역량 문제, 통일의 방도 문제입니다만, 호상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 연관이 무엇에 의해서 이루어지는가 하면 저는 바로 ‘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민족’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조선은 하나로 합쳐져야 살고 둘로 갈라지면 살 수 없는 유기체와 같다”는 입장에 기초한 ‘하나의 조선 노선’이고, 또 하나는 조국통일 문제는 외세에 의한 인위적인 분단상황을 끝장내고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적 자주권을 실현하는 문제, 갈라진 민족의 혈맥을 다시 잇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단합을 실현하는 문제라고 하는 통일 문제의 본질 규정, 그리고 다른 하나는 조국통일은 외세의 개입이나 간섭이 허용되지 않으며 그 누가 선사해줄 수도 없는 자주적인 위업이자 특정 계급이나 세력만이 다룰 문제가 아닌 전 민족적 위업이라고 하는 통일 문제의 성격 규정입니다.

‘하나의 조선 노선’이 우리 민족은 핏줄도 언어도 같은 단일민족이라는데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통일 문제의 본질 규정은 지금의 분단 상황이 우리 민족이 스스로 바라거나 선택해서가 아니라 외세에 의해서 빚어진 인위적 상황이라는 데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국통일이 자주적 위업이자 전 민족적 위업이라는 성격 규정은 필연적으로 통일의 주체세력을 우리 민족으로 보는 데로 이어집니다.

통일을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무력행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화적으로, 사상과 이념, 체제 차이를 초월해서 전 민족이 대단결하여 이룩하자고 하는 3대원칙도 그래서 나온 것이지요. 그리고 남북의 사상·체제를 서로가 인정하고 용납하는데 기초해서 통일을 실현하자고 하는 연방제 통일안은 분단의 장기화에 의해서 비록 남북이 사상, 체제 면에서는 이질화되었지만 반만년동안에 형성되고 공고화된 우리 민족의 동질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현실인식에 근거한 것입니다.

만약에 북에서 주체적 시각에 서지 못하고 고전이나 서구이론에 교조적으로 매달리고 민족이나 민족문제를 이해하고 대했다면 이같은 통일론은 창출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1945년 해방과 분단 이후 남북관계에서는 ‘민족문제’와 ‘계급문제’, ‘통일문제’와 ‘변혁문제’ 등 여러 문제들이 교차되며 나타났습니다. 북측은 오늘날 ‘계급과 민족’, ‘변혁과 통일’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먼저 민족과 계급의 관계 문제입니다만, 북에서는 계급과 계층은 민족의 한 부분이며 민족이 있고서야 계급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민족의 이익은 어디까지나 노동계급의 이익에 복종되어야 한다는 계급중시의 입장입니다만, 북에서는 민족중시의 입장입니다.

민족과 계급은 인간의 사회적 집단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성을 갖지만 민족은 자체 내에 여러 계급, 계층을 다 포괄하는 반면에 계급은 그같은 포괄성을 갖지 못하며 민족 안에서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족의 운명이자 민족을 이루는 전체 구성원들의 운명이고 민족의 운명 속에 개인의 운명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나라 없는 백성은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고 합니다만, 우리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가 된 순간부터 우리 민족 내부에 있던 어느 계급에게도 똑 같이 상갓집 개만도 못한 처지가 차례지지 않았습니까.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이 문제와 관련해서 제가 잊혀지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 1985년에 분단사상 처음으로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상봉했을 때입니다. 장내가 온통 눈물바다가 된 속에서 남쪽에 사는 오빠와 북쪽에 사는 누이가 만났는데, “내 걱정은 말라, 나는 잘 산다”고 말한 오빠에게 누이가 “잘 사는 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우리 서로 갈라진 채 잘 살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어요, 통일을 해야지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민족이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는데 어느 개인이 잘 산다고 그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하겠는가 하는 것이지요.

변혁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특정 계급에게만 이익이 된다면 그런 변혁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더욱이 우리의 경우 결코 분단이라는 민족의 비극적 상황을 외면해서 변혁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북의 민족주의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002년 담화에서 정식화 돼”
이제 북의 민족 문제에 이어 민족주의 문제로 들어가겠습니다. 북에서는 민족주의를 어떻게 정식화하고 있습니까? 그 시기는 대략 언제이며 아울러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북에서는 민족주의란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사상이라고 말합니다. 2002년 2월 26일과 28일에 진행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 『민족주의에 대한 옳바른 리해를 가질데 대하여』에서 이렇게 정식화되었습니다.

담화에 의하면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특징과 이익을 귀중히 여기며 민족의 융성번영을 지향하는 것은 민족 성원들의 공통된 사상감정이며 심리인데 이를 반영한 것이 바로 민족주의라는 것입니다. 또한 민족주의 그 자체는 원래 진보적인 사상으로서 발생했기 때문에 민족주의를 덮어놓고 반동시하거나 배척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민족주의와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옹호하는 부르주아 민족주의를 갈라 봐야 한다고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민족주의에 대한 똑똑한 견해가 없었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항일무장투쟁 당시 반‘민생단’투쟁이 극좌적으로 벌어지고 항일혁명투쟁에 막심한 해독을 끼쳤는데, 이를 수습하기 위해서 1935년 2월에 ‘다홍왜회의’가 열립니다.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4권을 보면 여기서 어떤 중국사람이 “ ‘민생단’의 아버지는 종파이고 종파의 아버지는 민족주의이며 민족주의의 아버지는 일본제국주의”라는 황당한 주장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원래 민족주의의 이념적 기초는 애국애족이며 이를 반동시하는 것은 곧 애국주의를 반동시하는 것으로 된다, 민족주의가 부르주아지의 사상적 도구로 이용되지 않는 이상 그것을 무덕대고 배척할 필요는 없다면서 민족주의자를 덮어놓고 이단시하지 말라고 김일성 주석의 반박이 가해졌습니다.

북에서는 이같은 정식화에 의해서 민족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애국애족의 일념에서 당당하게 손을 잡을 수 있는 사상, 이론적 기준이 마련되고 양자가 자기 민족의 운명을 함께 책임져 나갈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민족주의의 ‘진보성’은 무엇입니까?

말씀드린 것처럼 북에서는 민족주의는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진보적인 사상으로서 발생했다고 그 발생 자체를 진보적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위에서 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에서는 사람들이 민족국가를 단위로 해서 살며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조건에서 진정한 민족주의는 곧 애국주의로 되며,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사상, 애국애족의 사상이라는데 민족주의의 진보성이 있다고 지적되어 있습니다.

북에서는 우리 민족에 있어 민족주의의 발생과 그 성격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북에서는 민족이 형성되고 발전하는데 따라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사상으로서 민족주의가 발생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민족주의의 발생은 민족 발생의 산물이라는 입장입니다. 때문에 민족주의가 먼저 생겨났고 민족 형성은 그 결과물이라는 근대적 해석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 다음에 민족주의의 성격에 대해서는 민족주의가 해당 시대와 나라에 따라서 그 과제와 담당세력을 달리 하며 또한 권력이나 사회적 배경에 따라서 민족주의의 성격이나 기능도 달라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족주의의 성격과 관련해서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진정한 민족주의와 부르주아 민족주의를 갈라 보고 있습니다.

일제시대인 1930년대 항일무장투쟁 시기에 발생한 ‘민생단사건’이 오늘날 북의 민족주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습니까?

당시의 반‘민생단’투쟁에 대해서는 전 한신대 교수 김상일 선생께서 쓰신 좋은 글이 〈통일뉴스〉에 연재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에 대해서는 길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4권을 보면 당시가 일종의 악몽과도 같은 것이었다고 씌여져 있습니다.

회고록에는 김일성 주석 자신이 ‘민생단’ 문제와 관련된 과거를 지루할 정도로 길게 추억하는 목적은 후대들에게 조선혁명의 주체확립과 민족의 자주성과 관련된 교훈을 심어주자는데 있다면서 “나는 반‘민생단’투쟁과 그 총화로서의 다홍왜회의 과정을 통하여 자주성은 민족의 첫째가는 생명이라는 것과 이 자주성을 고수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민족을 이루는 모든 구성원들, 특히는 그 선각자들의 희생적인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을 심장깊이 절감하였다”, 이렇게 씌여졌습니다.

이것이 훗날 북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것은 김일성 주석에 의해서 자주성은 민족의 생명이라고 하는, 민족의 생명에 관한 독창적인 사상이 제시되고 이와 함께 자주성을 민족의 생명으로 보고 온 민족이 단결하여 민족의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하며 민족 공동의 번영을 이룩해야 한다는 주체적 민족관이 확립된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북의 ‘우리 민족제일주의’는 민족배타주의와 아무런 인연 없어”
북에서 민족주의 이론이 정립되기까지 한때 민족주의에 대해 긍정적 또는 부정적 입장을 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울러 긍정적 입장과 부정적 입장은 각각 무엇이었습니까?

말씀하신 대로 한때 민족주의와 공산주의가 서로 양립될 수 없는 것처럼 인식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원인은 우선 민족주의 자체에 있었다고 봅니다.

민족의 운명 문제를 해결한다고 할 때는 마땅히 민족 내부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사상, 이념상 차이로 인한 갈등 문제가 모두 민족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관점에서 초월되고 극복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민족주의는 그를 위한 대안을 제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까지 했습니다.

반면에 기존의 공산주의에도 결함이 있었습니다. 민족주의 문제를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혁명의 이익 중심으로 보았을 뿐 아니라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제한적이고 반동적 측면만을 보고 진보성이 있는 민족주의까지도 반사회주의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같은 경향은 조선에서도 나타났습니다.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는 일제시기 반일민족해방운동의 2대세력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공산주의자들은 사상적 미숙성과 고질적인 분파적 악습 때문에 민족주의를 덮어놓고 부르주아사상의 변종으로 여기고 배척했습니다. 또한 민족주의자들도 공산주의자들은 조국도 모르고 민족도 모르는 위험세력으로 오인했습니다.

우리의 근대사에서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자들이 민족적 단합의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하고 실천하고자 노력한 것은 1920년대 중기 이후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1927년 2월에 서울에서 발족된 ‘신간회’를 들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 사이의 ‘연공합작’은 1930년대에 들어와서 질적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당시 주체사상에 의해서 이끌렸던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주의자들을 배타적으로 또는 일시적 동맹자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먼 훗날까지 함께 손잡고 나갈 사람들로 보는데 기초한 반일민족통일전선 노선에 따라 그들과의 단합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1936년 5월 5일에 조국광복회가 창건된 이후 그같은 단합과 공동전선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이같은 경험과 전통은 해방 후 나라와 민족이 분단의 위기에 처했을 때도 위력을 발생했습니다. 그 전형적인 사건이 바로 1948년 4월에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제정당, 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입니다.

북에서 1986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우리 민족제일주의’는 민족주의의 한 형태입니까? 남측 일부에서는 북의 ‘우리 민족제일주의’가 민족주의와는 다르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우리 민족제일주의’에 관한 대표적인 문헌으로서는 1989년 12월 28일에 진행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을 높이 발양시키자』가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우리 민족제일주의’란 조선민족의 위대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조선민족의 위대성을 더욱 빛내어 나가려는 높은 자각과 의지로 발현되는 사상감정을 말합니다.

이것이 민족주의의 한 형태인가 하는 문제입니다만,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말씀드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에는 제국주의자들의 ‘세계화’, ‘일체화’를 단호히 반대배격해야 하며, 우리 민족의 우수한 민족성을 살리고 민족의 자주성을 옹호고수하기 위해서 견결히 투쟁해야 한다고 과제가 제시되어 있으며, 우리가 조선민족제일주의에 대하여 자주 강조하는 것도 민족성을 살리고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강조되어 있습니다.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이익을 귀중히 여기는 사상이 민족주의라고 할 때, 자기 민족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민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으로서 표현될 것이고, 또 자기 민족의 이익을 귀중히 여긴다는 것은 결국 민족의 자주성을 옹호 고수하는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의미로 ‘우리 민족제일주의’는 민족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에서 말하는 ‘우리 민족제일주의’는 자칫 인종주의나 민족배타주의로 오해받고 있습니다. 설명해 주십시오.

말씀드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를 보면 우리 민족이 제일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다른 민족을 깔보고 자기 민족의 우월성만 내세우라는 것이 아니며 ‘우리 민족제일주의’는 인종주의나 민족배타주의와 아무런 인연이 없다고 강조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 민족제일주의’가 자기 민족만이 제일이라고 하면서 타민족을 천하게 보는 것이라면 이는 민족배타주의 또는 인종주의나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 제일주의’는 자기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자기 민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모든 민족은 다 같이 자기의 우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대해서 강조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북의 ‘우리 민족제일주의’ 제기는 미국의 세계화 책동에 대한 반대 표시”
북에서 말하는 ‘진정한(참다운) 민족주의’와 ‘부르주아민족주의’와의 차이는?

북에서는 부르주아 민족주의는 부르주아 계급이 자기들의 계급적 이익을 민족적 이익으로 위장해서 민족주의를 계급적 지배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고, 이 때문에 민족주의 자체가 반동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면서 민족주의를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진정한 민족주의와 부르주아 민족주의를 갈라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민족주의라고 할 때는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은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진보적 사상, 애국주의로서의 민족주의를 말하고, 부르주아 민족주의라고 할 때는 말 그대로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민족주의이며 그것은 다른 나라나 민족과의 관계에서 민족이기주의, 민족배타주의, 대국주의(패권주의)로 나타난다고 북에서는 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민족주의는 영토 확장과 강대화를 위해서 자기 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우고 타민족을 억압하려는 제국주의적 민족주의, 그리고 그 반대로 피지배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주장하는 민족해방주의 혹은 민족자결주의 등으로 구분되어 왔습니다. 북의 자료를 보면 이같은 유형이 오늘에는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범주에 속하는 강대국 민족주의(패권민족주의), 그리고 그와 대립되는 저항민족주의, 현대의 신민족주의 등으로 나뉘어졌다고 하고 있습니다.

북에서는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와의 관계를 어떻게 봅니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화 『민족주의에 대한 옳바른 리해를 가질데 대하여』에는 “공산주의자가 되려면 진정한 민족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김일성 주석의 명제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공산주의자는 진정한 민족주의자가 되어야 하며, 자기 인민, 자기 민족, 자기 조국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이 참다운 공산주의자이며 진정한 민족주의자, 열렬한 애국자”라는 것입니다.

이는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가 연합할 수 있는 사상적 기초에 관한 문제로서 강조된 문제입니다만, 담화에서는 그 사상적 기초가 바로 애국애족이라고 지적되어 있습니다.

제가 두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는 1980년대 초기에 김일성 주석과 남측의 최덕신 전 외무부장관 사이에서 오간 이야기입니다.

이때 최덕신 선생께서 자신의 과거를 청산하고 조국통일을 위해서 일하고 싶다고 말씀하신데 대해 사의를 표하신 주석께서는 통일을 위해서는 모두가 민족의 이익을 우선시켜야 한다고 하시면서, 나는 일제를 반대하여 무장투쟁을 벌였을 때도 그러했지만 언제나 민족의 문제를 생각해 왔다, 자기 민족이 없이 공산주의를 해서 뭘 하겠는가고 하셨다 합니다. 훗날 최덕신 선생께서는 이 말씀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회고하셨습니다.

또 하나는, 올해가 꼭 20년이 됩니다만, 문익환 목사님께서 1989년 봄에 평양을 방문하셨을 때 이야기입니다. 그때 김일성 주석과 문익환 목사 사이에서는

문 목사 : “주체사상이 뭡니까?”
김 주석 : “주체사상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겁니다. 소련에도 있고 중국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걸 강조하는 까닭은 우리가 약소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문 목사 : “그렇다면 주체사상은 민족주의인가요?”
김 주석 : “사회주의도 민족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도 민족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저는 종교인들에게 말합니다”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합니다.

또한 북에서는 민족주의와 국제주의와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북에서는 민족주의가 국제주의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일관하게 주장해 왔습니다. 세계가 나라와 민족을 단위로 해서 구성되어 있는 조건에서 국제주의는 민족주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고, 민족과 민족주의를 떠난 국제주의란 사실상 아무런 의의도 없다는 것입니다. 북에서는 또한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의 운명에 대해서 무관심한 사람이 국제주의에 충실할 수 없으며,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의 부강번영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으로써 국제주의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북에서는 자주성은 자기 민족의 존엄과 권리를 지키려는 성질인 동시에 타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중시하고 존중할 것을 요구하는 성질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은 오늘날 민족주의(우리 민족제일주의)를 미국의 세계화, 일체화 책동에 맞서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설명해 주십시오.

미국의 ‘세계화’나 ‘일체화’는 본질에 있어서 세계의 ‘미국화’가 아니겠습니까? 냉전 종식 이후에 세계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결코 미국과 같은 특정국가에 의해 세계가 획일화되는 것이 아니라, 제각기 자기 식의 방식대로 살며 나라와 민족들이 서로 자주권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볼 때, 미국의 ‘세계화’ 전략은 완전히 시대적 지향과 요구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이 전략에 의해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민족들의 자주권과 생존권이 냉전시대 이상으로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미국의 ‘세계화’전략으로 상징되는 지배주의를 반대하는 문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민족들에게 있어서 자주냐 예속이냐, 생존이냐 소멸이냐 하는 문제로 됩니다. 그래서 북에서는 ‘세계화’를 단호히 배격하는 것이며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할 데 대한 문제, 또한 그를 위한 과제로서 ‘우리 민족제일주의’를 중요하게 제기했습니다.

“6.15선언의 ‘우리 민족끼리’는 민족주의의 한 형태”
조국통일에 있어 민족주의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십니까?

6.15공동선언은 조국통일의 주인은 특정한 계급이나 세력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공산주의자도 민족주의자도 모두 통일의 주인인 것이지요. 민족주의가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자기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사상이라고 할 때 현 시기 민족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조국통일 이상의 과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주의자들은 일제시기는 물론 해방 후도 공산주의자들과 손잡고 나라의 통일을 위해서 헌신해 왔고 지금도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전통을 계속 이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조국통일의 이정표인 6.15공동선언과 그 실천강령인 10.4선언이 있습니다. 이 두 선언은 ‘우리 민족끼리’가 관통되어 있는 것으로 하여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데, 민족주의는 여기서 자기의 진로를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면하게는 지금 모처럼 펼쳐진 ‘6.15시대’가 난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만, 민족주의자들이 북의 사회주의역량은 물론 자기들과 정견과 주의주장, 이해관계를 달리 하는 우리 민족 구성원들과 굳게 단결해서 6 .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고수하고 이행하는데서 역할을 놀아야 할 것입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남북의 정상이 합의한 6.15공동선언에 ‘우리 민족끼리’가 나옵니다. ‘우리 민족끼리’를 민족이 합의한 민족주의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 민족끼리’란 자기 민족의 운명을 그 어떤 외세의 개입이나 간섭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또한 민족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서 개척해 나간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조국통일 문제에 적용한다면,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쳐 나라의 통일문제를 민족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 나간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방도를 자기 민족을 중심에 놓고 모색하자는 이념이나 정신을 표어화한 것이 ‘우리 민족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로는 ‘우리 민족끼리’를 민족주의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코 아닙니다.

세계적 차원에서 탈냉전 이후 북에서는 한반도의 모순구도를 ‘외세(미국) 대 (남북) 우리 민족’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남북 우리 민족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북에서 그렇게 모순구도를 보는 것은 지금의 분단상황이 우리 민족 스스로가 택한 것이 아니라 외세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초래된 문제이며, 이 분단으로 말미암아 우리 민족 전체가 재난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에서 조국통일 문제를 남북간의 사상, 체제상 차이로 인한 대립을 해소하는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자주권을 실현하는 문제로 보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꼭 확인해둘 것은, 우리가 조국을 통일하는데서 외세의 간섭과 개입을 반대한다는 것이지 남의 나라라고 덮어놓고 배척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국을 비롯한 주변나라들이 조국통일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협조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통일문제에 간섭하고 방해하는 요인이라는 의미에서의 외세로 보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요즘 미국에서 오바마 정권이 등장한 것을 계기로 다시 거론되게 된 ‘통미봉남’ (通米封南) 문제입니다. 북이 어떤 때에는 우리 민족끼리 했다가 어떤 때에는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것인데, 이는 잘못된 견해입니다. 북의 입장은 남북간에는 우리 민족끼리 할 이야기가 있고 풀어야 할 문제가 있으며, 또한 미국과는 그들과 할 이야기가 있고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남북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입니다만, 하나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서 함께 해결할 문제가 있고 또 하나는 남북이 자기 지역에서 각기 놀아야 할 역할과 과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지금의 위기상황에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고수하고 이행하자는 문제는 남북은 물론 해외동포들 앞에도 나서는, 말하자면 민족 공동의 과제입니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주변나라들이 한반도에 긴장상태를 조성시키고 평화를 위협할 경우도 이는 민족이 공동으로 대처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그러면서도 같은 과제를 수행하는데서 남북 또는 해외가 놀아야 할 역할은 서로 다를 것입니다. 가령 남녘동포들이 촛불시위를 벌였습니다만, 북이나 해외에서는 그를 지지하고 성원을 보낼 수 있지만 그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싸울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지역이 나 몰라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남이든 북이든 해외든 각기 지역마다에서 제기되는 과제는 매 지역 동포들이 책임지고 풀어 나가되, 그야말로 ‘우리 민족끼리’ 정신에 기초한 굳은 민족적 연대 속에서 그같은 투쟁이나 운동이 벌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북에서 해외교포 문제는 민족 문제의 일환”
이제, 재외동포의 민족 및 민족주의 문제로 넘어 가겠습니다. 재일동포의 경우 우리 민족과 ‘핏줄’은 같지만 ‘경제생활의 공통성’에서는 차이가 납니다. 이는 북측의 민족론 입장에서 볼 때 민족개념에서 하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언어’와 ‘지역’의 공통성은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즉, 재일동포 2,3,4,5세대까지는 언어를 고수, 사용할 수 있지만 10세대 이상이 되면 언어 유지가 어려울 수 있으며, 또한 장기적인 타지역 정주가 지역적 공통성을 허물 수도 있습니다. 이를 민족론 입장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사실 민족성을 어떻게 지켜 나가겠는가 하는 문제는 재일동포 사회에서 중요한 과제입니다. 또한 이는 세대가 바뀔수록 더 힘든 문제가 되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외동포의 민족적 동화가 불가피하고 민족으로서의 존속이 곤란해진다고만 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동포사회에서 민족, 민족의 공통성을 보존하는 사회적 요건과 그를 마련하고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측에서 ‘우리 학교’ 영화가 제작되고 히트가 되었습니다만,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에 대해서 그같은 시각에서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가령 저도 일본에서 나서 자란 재일동포 2세입니다. 때문에 1세 동포들에 비하면 민족성 면에서 아무래도 차이가 있습니다. 또 우리의 자식들이나 손자들, 그러니까 3세, 4세가 되면 또 우리와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비록 모국 사람들이 듣기에는 비록 서툴기는 하지만 모국어를 쓸줄도 알고 민족적 자각이나 자존심도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요인은 물론 부모의 영향도 있습니다만, 주되게는 교육입니다.

해외교포들의 민족성을 지켜 나가기 위한 사회적 여건에는 마땅히 모국의 역할이나 노력도 포함됩니다. 저는 동포들의 민족성 문제를 민족론 입장에서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러한 각도에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북에서는 해외교포 문제는 자기 민족문제의 일환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근저에는 해외교포란 비록 남의 나라에서 살고 있어도 다 함께 같은 민족으로서의 형성과정을 거쳐 온 동포들과 그 후손들이라는 입장과 관점이 깔려 있습니다.

우리 재일동포를 놓고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가 일본에서 살거나 나서 자라게 된 것은 결코 자발적인 해외이주 때문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겼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자기들의 운명을 모국의 운명과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고, 통일운동도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에 따라서 조국과 해외교포의 관계는 모체와 부분의 관계이며 조국의 운명이자 해외동포들의 운명이라는 정의가 또한 내려지게 되었으며, 이것이 북의 해외교포정책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북의 해외교포 정책, 특히 재일동포들을 자기들의 해외공민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미 널리 알려진 재일동포 자녀들을 위한 교육원조비, 장학금의 송금입니다. 전후 복구건설기에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우리가 공장을 한두 개 못 짓는 한이 있더라도 재일동포 자녀들을 위하여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어야 한다는 당시 김일성 수상의 뜻에 따라서 그 예산이 국가예산 항목에 포함되게 되었는데, 1957년부터 시작된 교육원조비, 장학금의 송금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성이론들을 보면, 해외교포 문제를 그들과 조국의 관계보다도 그들과 그들이 사는 거주국의 관계를 중시하는 시각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교포 문제를 다른 나라에 정착되어 사는 동포들의 법적 지위나 처우문제 차원에서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나니 해외교포를 남의 나라에서 사는 소수민족, 심지어는 사실상 외국인으로 보는 경향까지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2007년에 발표된 10.4선언 8항에 “남과 북(북과 남)은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이익과 해외동포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기된 것은 참으로 획기적이었으며 우리에게 얼마나 고무적이었는지 모릅니다. 지난날 거주국에서의 민족적 차별과 학대에다가 조국 분단에 의한 고통까지 겪어 온 재일동포들을 비롯한 모든 해외동포들은 통일조국의 해외동포로서 살 그 날을 현실적으로 내다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일본에 있는 동포의 경우, 남과 북의 분단과 그 후유증으로 인해 총련과 민단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남북의 분열만큼 총련-민단의 분열도 오랜 세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특히 6.15공동선언에 맞게 일본에서도 동포들의 단결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를 짧게 정리해 주십시오. 아울러 앞으로 재일동포들의 단결 움직임을 예상한다면 그 원칙과 방향은?

일본정부에게는 역사적 경위로 보나 자기들의 도덕적 의무로 보나 재일동포들을 외국인으로서 대우할 뿐 아니라 그들을 성실히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동포들을 일본의 국익에 저촉되는 부담스러운 존재, 심지어 치안의 대상으로 보면서 오직 차별과 통제, 동화의 대상으로만 여기며 처우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정책이나 자세는 남측을 “조선반도의 유일합법정부”라고 규정한 ‘한일조약’의 체결 이후 보다 정치적 색채를 띠고 악랄해졌습니다. 그로 인해서 동포들이 갖는 조선 국적은 국적이 아닌 ‘기호’가 되었으며 북을 지지하는 총련을 시종일관 ‘파괴활동방지법’(파방법)의 적용대상으로 지목하고 이 조직의 활동가와 산하 동포들에게 이러저러한 정치적 압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총련계 동포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 사소한 사건이나 위법행위를 구실로 한 폭력적 탄압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북과 관련된 무슨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동포들, 심지어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비열한 협박과 폭행이 가해지고 있으니 동포들은 사상, 신조, 국적선택의 자유는 물론 생존권마저 상시적으로 위협받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재일동포 사회는 총련과 민단으로 갈라졌습니다. 그런데 일본정부가 남측을 지지하는 민단 동포들은 우대하고 북을 지지하는 총련 동포들만 차별하고 탄압하는가 하면, 표면상은 그렇게 보일지 모릅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2006년 5월 17일에 총련과 민단이 화해를 하고 공동성명까지 발표했다가 이것이 민단내 보수층의 반대로 무산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배경에는 “총련과 화해하겠으면 민단도 총련과 똑같은 파방법의 적용대상으로 보겠다”고 위협하고 민단계 동포들의 생활과 기업활동에까지 이러저러한 압력을 넣었던 일본 당국이나 우익세력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총련과 민단, 나아가서 재일동포들이 화해하고 단합하기 위한 노력을 중단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민족의 통일 이념으로 ‘우리 민족끼리’ 상정 가능”
통일은 남북해외가 전 민족적으로 단결하는 문제입니다. 이를 줄여서 '민족대단결’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통일 이념으로 무엇을 상정할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 민족주의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북에서는 온 민족이 화합하고 하나로 단결한다면 그것이 곧 우리가 바라는 조국통일이며, 조국을 통일하는데서 기본은 그 어떤 절차나 방법상의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온 민족의 진정한 화합과 단합을 이룩하는데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민족대단결이 조국통일의 근본 전제이자 그 본질적 내용을 이룬다는 것이지요.

민족대단결이란 민족의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하기 위하여 사상과 이념, 정견과 신앙의 차이, 재산의 유무와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모든 계급, 계층이 민족 공동의 요구와 이익을 첫 자리에 놓고 단결한다는 것인데, 이는 민족의 화합과 단합을 이룩하는 문제, 민족적 일체성을 회복하는 문제로서 그 자체가 곧 조국통일을 의미하게 됩니다.

김일성 주석께서 민족의 화합과 단결이자 곧 통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나, 또한 문익환 목사께서 겨레의 마음과 마음이 합쳐지면 그것이자 통일이라는 의미에서 “통일은 다 됐다”고 말씀하신 것도 그러한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 민족의 통일 이념으로서 무엇을 상정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만, 김일성 주석에 의해서 제시된 전 민족대단결 10대강령에서는 민족애와 민족자주 정신을 민족대단결의 이념적 기초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민족주의가 대안이라기보다 우리 민족을 결집시킬 수 있게 하는 공통분모를 마련하는데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굳이 통일적 이념을 상정한다면 민족자주의 정신과 민족대단결의 정신이 함축된 ‘우리 민족끼리’가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통일뉴스에 게재된 인터뷰 내용중 일부를 수정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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